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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칼리바

다른 표기 언어 Saqalibah

요약 이슬람교도가 지배하던 중세 스페인에서 살았던, 슬라브족이나 콘스탄티노플 북쪽의 흑해 연안에서 온 사람들을 일컫던 말.

나중에는 의미가 확대되어 군대에 복무하는 모든 외국인 노예를 가리키게 되었다.

10세기에는 게르만족이 동유럽 원정에서 사로잡은 슬라브족을 노예로 사들이는 것이 스페인의 관습이었다. 이들과 갈리치아·롬바르디아·칼라브리아 및 프랑크 왕국 영토에서 온 다른 노예들(대부분 어린 소년들)은 이슬람교도가 되어 아랍어를 배운 뒤에는 군대에 복무할 수 있도록 군사훈련을 받거나 궁전과 하렘에서 행정 업무를 맡을 수 있도록 훈련받았다.

스페인에 있는 사칼리바의 수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영토를 더욱 확대하고 가능하면 북아프리카까지 영토를 넓히려는 우마이야 왕조 통치자들의 계획과 보조를 맞추어 계속 늘어났다. 아브드 알 라만 3세(912~961) 시대에만도 노예의 수가 약 4,000~1만 4,000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이런 수적 증가와 더불어 그들이 이슬람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도 차츰 높아졌다.

사칼리바는 부와 재산을 축적했고, 노예를 두었으며, 학자와 시인이 되었다. 그들은 고위 공직과 군사 지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수도에서 상당한 정치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우마이야 왕조는 유력한 아랍 귀족들의 영향력을 상쇄시키는 데 그들을 이용했다. 그리하여 슬라브족인 나지다는 939년에 우마이야 군대를 이끌고 레온의 라미로 2세와 싸웠다. 1009년에 우마이야 왕조의 히샴 2세가 폐위되자 사칼리바족은 코르도바에서 가장 큰 세 파벌(타이파) 가운데 하나로 등장했는데, 이 3개의 파벌은 그후 23년 동안 왕국을 지배하면서 통치자를 마음대로 세웠다 폐위하곤 했다.

내전과 혼란으로 가득 찬 이 시기(1009~91)에 사칼리바족은 데니아·토르토사·발렌시아·알메리아에 왕국을 세웠지만, 그들은 다른 파벌들, 즉 아랍족이나 베르베르족과는 달리 왕조를 세우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작은 왕국들은 1090~91년 모두 사라지고 스페인에 새로 건설된 알모라비드 왕조에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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