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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의

다른 표기 언어 Ssuma I , 司馬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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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79
사망 251
국적 위(魏), 중국

요약 사마의는 서진 건국의 기초를 다졌다. 후한 말 경조윤이었던 사마방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유학에 조예가 깊었다. 조조에게 등용되어 문학연, 황문시랑, 주부 등의 관직을 거쳤다. 위가 건국되자 태자중서자가 되어 여러 가지 계책을 올렸는데, 특히 조조에게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 20만 명을 둔전시키도록 건의했다. 234년 명제 때 제갈량의 도전을 받아 오장원에서 대진하던 중 제갈량이 진중에서 죽음으로써 그 군사는 물러갔다. 그 뒤 요동의 공손연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여 낙랑, 요동 등의 4군을 위나라에 병합했다. 명제가 죽고 제왕이 즉위한 뒤 시중이 되었고 지절도독중외제군사로서 군권을 장악했다. 그 후 대장군 조상이 그를 배척하려 하자 반란을 일으켜 그를 죽이고 249년 승상이 되어 정치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사마의(司馬懿)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정치인이자 군략가이며, 훗날 그의 손자 사마염이 세운 서진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다.

ⓒ Jonathan Groß/wikipedia | Public Domain

자는 중달, 묘호는 고조(高祖), 시호는 선제. 하내 온(허난 성 원 현) 사람이다.

서진 건국의 기초를 다졌다. 후한(後漢)말 경조윤이었던 사마방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유학에 조예가 깊었다. 201년 군(郡)의 상계리로 추천되었고, 나중에 조조(曹操)에게 등용되어 문학연·황문시랑·주부 등의 관직을 거쳤다.

위(魏)가 건국되자 태자중서자가 되어 여러 가지 계책을 올렸는데, 특히 조조에게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 20만 명을 둔전시키도록 건의했다. 문제(文帝:曺丕) 때에도 요직을 역임했다. 234년 명제(明帝:曺叡) 때 제갈량의 도전을 받아 오장원에서 대진하던 중 제갈량이 진중에서 죽음으로써 그 군사는 물러갔다. 다음해 태위가 되었고 그뒤 요동의 공손연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여 낙랑·요동 등의 4군을 위나라에 병합했다.

명제가 죽고 제왕이 즉위한 뒤 시중이 되었고 지절도독중외제군사로서 군권을 장악했다. 그후 대장군 조상이 그를 배척하려 하자 반란을 일으켜 그를 죽이고 249년 승상이 되어 정치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251년 상국이 되었고 안평군공에 봉해졌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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