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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5. 1. 28, 미프랑스 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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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07년 53%의 표를 얻어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에 승리하고 프랑스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스와 헝가리 출신의 부모에서 태어났다. 1983년 뇌이쉬르센의 시장으로 선출되었고, 1993년 발라뒤르 총리 정부에서 예산장관 겸 정부대변인이 되었다. 2002년 시라크의 대통령 재선 이후 내무장관으로 임명되어 2004년 3월 재무장관이 될 때까지 임기를 수행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시라크는 사르코지에게 정부직책과 중도우파 대중운동연합당의 당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했는데, 사르코지는 대중운동연합당 직책을 택했다. 2007년 대통령 선서에서 사르코지는 급진적인 경제개혁, 미국과의 보다 친밀한 관계를 포함하는 등 과거의 프랑스와의 ‘단절’을 약속했다.
2007년 프랑스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사르코지는 그리스와 헝가리 출신의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변호사 자격 취득 후 파리 정치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1979~81). 야망과 실력을 갖춘 정치인으로서 사르코지는 1983년 뇌이쉬르센의 시장으로 선출되어 2002년까지 임기를 수행했다.
1993년 발라뒤르 총리 정부에서 예산장관 겸 정부대변인이 되어 처음으로 국정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발라뒤르는 시라크 등 우파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아 사회주의자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밑에서 총리를 맡았는데, 이는 1995년 대통령 선거에 시라크를 비롯한 누군가가 나선다는 구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발라뒤르에게 직접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을 권유했고, 그로 인해 한때는 매우 절친했던 시라크와 반목상태가 지속되기도 하였다. 발라뒤르가 시라크에 패하자, 사르코지는 이후 1995~97년까지 중도우파 정부에 입각하지 못했다.
2002년 시라크의 대통령 재선 이후 곧이어 또 다른 중도우파 정부의 선거가 이어졌다. 사르코지는 내무장관으로 임명되어 이 직책으로 2004년 3월 재무장관이 될 때까지 거의 2년 동안 임기를 수행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시라크는 그의 정부직책과 중도우파 대중운동연합당(Union pour un Mouvement Populaire/UMP)의 당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 당은 시라크가 창건했던 공화국연합(Rally for the Republic)을 승계한 신드골주의파였다. 사르코지는 UMP 직책을 택했고, 2004년 11월에 정부를 떠났다.
2005년 5월, 프랑스 국민들이 유럽연합헌법에 반대하는 국민투표가 실시된 후 시라크는 사르코지를 새 정부의 내무장관으로 복귀시켜 도미니크 드 빌팽의 수하에 두었다. 2005년 말 사르코지는 부유하지 않은 파리 근교와 다른 도시들에서 일어난 3주간의 소요사건과 싸워야 했다. 비판자들은 그가 차량방화 시위자들을 '쓰레기'라고 부르며 자극했다고 비난했으나, 지지자들은 그의 엄격한 이민법 요구는 물론, 법과 질서에 대한 그의 강경노선에 동조했다.
2007년 사르코지는 프랑스 대통령에 출마했다. 4월 22일, 31퍼센트를 득표하여 경선에서 이기고, 5월 6일 결선 투표에서 53퍼센트의 표를 얻어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에 승리를 거두었다. 2007년 5월 16일 사르코지는 대통령 선서를 했다. 그는 세금감면과 노동시장을 자율화하는 급진적인 경제개혁, 미국과의 보다 친밀한 관계를 포함하는 등 과거의 프랑스와의 '단절'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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