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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격이 시작된 것은 총포술이 도입된 16세기말부터이나 사격경기가 시작된 것은 20세기초로, 육군연성학교(陸軍硏成學校)에서 고정된 표적을 두고 장총으로 서서쏘기·무릎받쳐쏘기·엎드려쏘기 등을 실시해 우열을 결정한 것이 그 시초였다. 8·15해방까지 별다른 발전을 보이지 못했으나 1955년 2월 대한사격협회(지금의 대한사격연맹)가 발족되면서 대한 올림픽 위원회(KOC)의 후원을 받아 국제사격연맹의 임시회원국으로 가입했으며 1960년에는 정회원국으로 승인을 받았다.
한국은 1956년 제16회 멜버른 올림픽 대회를 시작으로 국제대회에 선수를 파견하기 시작했으며 1962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벌어진 제4회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국제대회 사상 첫 메달을 획득했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300m 자유소총에서 남상완(南相完)이 금메달, 50m 자유권총에서 서강욱(徐康旭)이 동메달, 소구경 3자세에서 배병기(裵炳基)가 동메달을 따냈다.
이어 1967년에 열린 제1회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는 공기소총 개인전과 센터파이어 권총 단체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남상완의 맹활약에 힘입어 우수한 성적을 올렸으며, 1970년에 타이 방콕에서 열렸던 제6회 아시아 경기대회에서는 3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와 같은 국제대회에서의 전적과 경험을 바탕으로 1971년 9월에는 국제규모의 시설을 자랑하는 태능국제종합사격장이 준공되었으며 그해 10월 한국사격사상 처음으로 이 경기장에서 제2회 아시아 선수권대회를 개최하여 남상완·김달협(金達莢)이 아시아 신기록을 수립했으며 종합성적 1위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했다.
1970년대 이래 한국의 사격은 경기시설·기술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여 아시아 지역 국가로는 처음으로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태능사격장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이 대회에는 68개국에서 1,000여 명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하여 당시로서는 최대규모를 자랑했다. 또한 처음으로 전자식 자동통제장치로 경기를 실시했을 뿐만 아니라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한국고유의 전통문화예술을 소개하여 사격경기를 사격문화재로 승화시켰다.
1986년 9월 20일에서 10월 5일까지 한국에서 개최된 아시아 경기대회의 사격부문에서는 금메달 7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를 획득했다. 이 경기에서 여자공기소총 경기에 출전한 박정아(朴貞娥)와 소구경 속사단체경기와 개인전에 출전한 차영철(車榮哲)은 각각 2관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또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된 제24회 올림픽 대회의 사격부문에서는 남자 소구경 소총복사경기에서 차영철이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2년 7월 25일부터 8월 11일까지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제25회 올림픽 대회에서도 한국사격선수단은 소구경복사에서 이은철, 여자공기소총에서 여갑순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좋은 성적을 올렸다. 2000년 제27회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강초현이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2004년 제28회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여자 트랩, 더블트랩에서 이보나가 동메달과 은메달, 50m 권총 종목에서 진종오가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제29회 베이징 올림픽에서 진종오가 50m 권총 종목에서 금메달, 10m 공기권총 종목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2012년 제30회 런던 올림픽에서 50m 권총과 10미터 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대회에서 최영래가 50m 권총에서 은메달, 김종현이 남자 50m 소총 3자세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여자 사격 25m 권총에서 김장미가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한국 사격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2016년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진종오가 50m 권총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3연패를 달성했으며, 김종현이 50m 소총 복사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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