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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29. 1. 22, 이탈리아 밀라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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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14. 11. 24, 로마 |
국적 | 이탈리아 |
요약 이탈리아의 정치가.
19세기 국가통일운동 시대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의 권력정치 시대에 이르기까지 50년 이상을 정치가와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청년시절 1848년 이래 계속된 반오스트리아 운동에 참여했고, 1859년 피에몬테로 피신했다. 이탈리아 독립전쟁중 비스콘티는 외교관 자격으로 피에몬테 정부에서 일했으며, 독립전쟁 결과 이탈리아의 대부분 지역이 피에몬테-사보이 왕조를 중심으로 통일되었다. 1863년 비스콘티는 통일 이탈리아 정부의 외무장관으로 취임했으나, 프랑스군이 로마에서 철수하는 대가로 수도를 토리노에서 피렌체로 옮길 것을 약속한 1864년 협정을 조인했다 하여 직위를 박탈당했다. 잠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 대사를 지내다가 1866년 '6주전쟁'이 발발하자 외무장관으로 복귀했고, 또다시 실각했다가 1869~76년 로마가 수도였던 시기에 장관직을 수행했다.
20년 동안 비스콘티는 우익 인사라는 이유로 입각이 좌절되었다. 1896년 에티오피아의 아드와 전투가 참패로 끝나자 좌익 정부의 외교정책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비스콘티는 다시 외무장관으로 취임했다. 변화된 국제정세에 대응하여 비스콘티는 3국동맹의 파트너인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하여 프랑스와의 관계개선정책에 착수했으며, 1896년에는 튀니지 거류 이탈리아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대가로 프랑스의 튀니지 보호령화를 승인했다.
그뒤 1년여 동안 직책에서 물러나 있다가 1899년 5월에 다시 복귀했으며, 프랑스와의 친선우호정책을 재개하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각자 모로코와 리비아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1902년 협정의 바탕을 마련했다. 1906년에는 알헤시라스 회의에 이탈리아 대표로 참가했다. 비스콘티가 사망할 무렵, 그가 추진해온 친프랑스 정책은 2가지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첫째는, 이탈리아가 1911~12년 터키와의 전쟁 이후 리비아를 점령하게 된 것이고, 둘째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중립을 선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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