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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에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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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세기에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이탈리아의 예술가 집안.
family Bibiena는 Bibbiena라고도 씀.

비비에나라는 이름은 가문의 시조인 조반니 마리아 갈리(1625~65)가 태어난 피렌체 근처의 비비에나라는 마을에서 유래한 것이다.

프란체스코 알바니 밑에서 그림을 배운 조반니는 가문의 예술적 토대를 처음으로 쌓았으며 자손들은 그의 예술성을 이어받아 연극 무대 장치 제작에 헌신했다. 이 가문의 여러 예술가들은 이탈리아 후기 바로크 양식 건축물과 조각품의 고도로 장식적인 양식을 자유롭게 구사하여 일련의 도안을 창조했는데 복잡한 원근법을 이용한 널찍한 공간 구성과 화려함은 놀랄 만하다.

1690~1787년에 8명의 비비에나가 예술가들은 오페라 무대와 장례식장 및 결혼식장을 눈부시게 장식하여 유럽의 거의 모든 궁정을 매혹시켰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그들을 아낌없이 후원한 최대의 고객이었다(바로크 예술).

볼로냐에서 태어난 페르디난도 갈리 비비에나(1657~1743)는 조반니 마리아의 맏아들었다.

그는 카를 로 치냐니에게 그림을 배웠고, 파라도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줄리오 트로일리에게 건축을 배웠다. 그는 치냐니의 추천으로 파르마 공작을 모시게 되었다. 이 시기 그의 주요작품은 콜로르노의 저택과 정원이었지만 곧 무대 장치가로 명성을 얻어 연극을 위해 일했다. 1708년 그는 초청을 받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서 장차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될 카를 6세의 결혼식에 필요한 모든 장식을 담당하게 되었다.

카를이 제위에 오르자 페르디난도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서 궁정에서 열리는 축제와 오페라의 무대 장치 및 장식 디자이너로 일했다. 1717년 볼로냐로 돌아오자마자 '아카데미아 클레멘티나' 회원으로 선정되었다. 1731년 만토바 왕립극장(1781년에 화재로 소실)을 지었고 여러 권의 책도 썼는데 다양한 제목으로 재발행된 〈민간건축 L'Architettura civile〉(1711)과 〈원근법의 다양한 효과 Varie opere di prospettiva〉(1703~08)가 대표작이다. 볼로냐에서 태어난 프란체스코 갈리 비비에나(1659~1739)는 조반니 마리아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로렌초 파시넬리와 치냐니 밑에서 배웠고, 피아첸차와 파르마 및 로마에서 일하다가 만토바 공국의 전속 건축가가 되었다. 그는 제노바와 나폴리에 머물다가 초청을 받고 빈으로 가서 거대한 극장을 지었다. 또한 프랑스 낭시에 있는 대형극장, 밀리차아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장이라고 평한 베로나의 필라르모니코 극장, 그리고 로마의 알리베르트 극장 등을 지었다. 1726년 볼로냐로 돌아가 아카데미아 클레멘티나를 이끌었다.

페르디난도의 맏아들인 알레산드로 갈리 비비에나(1687~1769)는 파르마에서 태어났다.

1719년에 그는 독일 팔라틴 선제후의 궁정에서 전속 건축가 겸 화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성(城)의 오른쪽 윙(옆으로 뻗은 건물)과 오페라 극장(둘 다 1795년경에 화재로 소실됨) 및 만하임의 예수회 교회 등이 있다. 페르디난도의 둘째 아들인 주세페 갈리 비비에나(1696~1757)는 비비에나 가문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가였다. 그는 파르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바르셀로나로 갔다가 다시 빈까지 따라갔다.

아버지가 떠난 뒤에도 그는 계속 빈에 머물면서 화려한 궁정 축제와 행사의 주요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연극과 무도회의 배경을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30명이 넘는 귀족과 군주들의 장례식을 위해 관대(棺臺)를 설계했다. 1722년 뮌헨에서, 1723년에는 프라하에서 일했다. 1742년 빈 오페라 극장을 장식했고 1747년에는 독일 작센의 드레스덴에 있는 오페라 극장에 고용되었으며 1748년에는 바이로이트의 극장 내부를 설계했다.

그리고 1750년 그는 드레스덴 오페라 극장을 수리했다(1849년에 화재로 소실). 그는 베를린에서 죽었으며, 자신이 만든 무대 배경을 3권의 판화집 〈알치나 Alcina〉(1716)·〈불변과 강건 Costanza e Fortezza〉(1723)·〈건축과 원근법 Architetture e prospettive〉(1740~44) 등에 수록하여 출판했다. 페르디난도의 셋째 아들인 안토니오 갈리 비비에나(1700~74)는 이탈리아 만투아에 있는 아카데미아 비르질리아나와 볼로냐에 있는 콤무날레 극장을 지었다.

그는 빈 궁정에도 고용되어 일했다. 주세페의 아들인 카를로 갈리 비비에나(1728~87)는 빈에서 태어났다. 비비에나 집안 사람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연극에 종사한 카를로는 가문의 누구보다도 더 많은 여행을 했다. 그는 독일·프랑스·네덜란드에서 일했고(1746~60), 영국의 런던(1763)으로 갔다가 나폴리(1772)에서 5개의 오페라 무대를 발표했다.

스톡홀롬(1774)을 거쳐 1778년까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했으며 피렌체에서 죽었다. 비비에나가 예술가들의 연극무대장치는 내구성이 있는 재료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궁정 행사를 위한 장식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 중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따라서 그 작품의 화려함과 웅대함은 드로잉으로만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린 드로잉은 많이 보존되어 있는데, 주로 빈·뮌헨·드레스덴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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