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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09. 8. 22, 미국 뉴욕 바타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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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90. 5. 1, 버지니아 리치먼드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사회개혁가.
푸리에주의를 미국에 소개하고 보급시켰다.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주로 개인교사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18세 때 당대의 위대한 사상가들로부터 사회개혁에 관해 배우기 위해 유럽으로 갔다.
그러나 파리의 기조, 베를린의 헤겔에게 실망을 느끼고는 투르크 문명에 대해서 공부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로 갔다.
1830년 프랑스로 돌아간 직후에 샤를 푸리에의 저서를 접하게 되었는데, 독립적이고 자급자족적인 공동체에 대한 푸리에의 신념에 감명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2년 동안 푸리에의 지도를 받으면서 공부를 하다가 1834년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잠시 병으로 고생하다가 1839년부터 비로소 푸리에주의 신봉자들을 모으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강연을 통해 푸리에의 공동체사회를 널리 알리고 또한 건설에 착수했으며, 〈인간의 사회적 운명 Social Destiny of Man〉(1840)을 써서 광범위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호레이스 그릴리는 뉴욕 트리뷴지에 푸리에주의(브리즈번은 그 당시에는 이것을 협동주의라고 불렀음)를 해설하는 지면을 브리즈번에게 제공했으며, 그의 글이 발표되자 미국에 많은 수의 푸리에 협회가 조직되었다. 그러나 이런 단체는 브리즈번 자신이 세운 것을 포함하여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협동주의에 대한 일반대중의 관심도 사라졌다. 브리즈번은 푸리에주의에 대한 믿음을 결코 버리지 않았지만 점차 연구·여행·발명 등 다른 분야로 관심을 돌렸다. 편집인인 아서 브리즈번이 그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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