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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974경, 작센 크베르푸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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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009. 3. 14, 프로이센 브라운스베르크 근처 |
국적 | 작센, 독일 |
요약
축일은 6월 19일. 프로이센에서 활동한 선교사·주교·순교자.
Saint Boniface of Querfurt라고도 함.
크베르푸르트 백작 가문 출신으로 작센에 있는 마크데부르크 대성당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20세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오토 3세의 황실 성직자단에 들어갔다. 997년 오토를 수행하여 로마로 갔다가 성 로무알두스로부터 엄격한 금욕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프라하의 주교 성 아달베르트가 순교했다는 소식이 로마에 전해지자(997) 산보니파초와 산알레시오 수도원에 들어가 이름을 보니파키우스로 바꾸었으며, 따라서 성 보니파키우스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1001년 오토 황제는 브루노와 로무알두스를 위해 라벤나 근처 페레움에 수도원을 세웠고, 브루노는 이곳을 중심으로 아달베르트가 프로이센 이교도들을 상대로 벌인 그리스도교 선교활동을 계속하여 최초로 성 베네딕투스와 성 요한네스를 포함한 소수 선교단('순교당한 다섯 형제들')을 폴란드에 파송했다.
그러나 이 선교단은 가는 도중 살해당했다. 브루노는 이들의 전기를 썼고, 교황 실베스테르 2세에 의해 대주교로 임명된 뒤 독일로 가서 신앙심 깊은 왕 하인리히 2세(훗날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하인리히는 그 계획에 반대했다. 그뒤 헝가리의 이스트반 왕을 찾아갔으나 격려를 받은 정도였고, 다음으로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블라디미르 대공을 찾아갔다.
헝가리에 머무는 동안(1004) 현존하는 3권의 아달베르트 전기 가운데 가장 뛰어난 전기를 썼다. 돈 강과 도나우 강 중간지대에 거주하던 이교도 페체넥족에게 복음을 전해 성과를 거둔 결과 그들은 블라디미르와 평화조약을 맺고 한동안 명목상으로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그뒤 프로이센 선교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18명의 동료와 함께 길을 떠났으나 이교도들에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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