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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78. 6. 7, 런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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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40. 3. 30, 프랑스 캉 |
국적 | 잉글랜드 |
요약
영국의 멋쟁이 신사이며 웨일스 공 조지(1811년부터 섭정, 후에 조지 4세가 됨)의 친구.
본명은 George Bryan Brummell.
19세기초 유행의 선구자로 간주되었다.
할아버지는 런던의 세인트제임스 교구의 상점 주인으로 귀족들에게 숙소를 빌려주는 일을 했으며, 아버지는 1770~82년에 노스 경의 개인 비서직을 지내다가 버크셔 주 장관이 되었다. 일찍부터 자신의 옷에 많은 신경을 썼던 그는 1790년에 들어간 이튼 학교에서 아주 유명해져 '멋쟁이 브러멀'로 알려졌다. 옥스퍼드대학교 오리엘 칼리지에 잠깐 다닐 때에도 옷차림과 재치로 유명했다. 런던으로 돌아온 뒤 이튼 시절에 알게 된 왕세자에 의해 그의 연대장교로 임명되었다(1794). 브러멀은 곧 이 후원자와 친해졌고 대위로 진급한 뒤 1798년에 군대를 떠났다. 1799년 약 3만 파운드의 재산(1794년에 죽은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메이페어에 독신자 협회를 만든 그는 왕세자의 호의와 옷에 대한 안목 덕분에 패션의 권위자로 인정받아 모든 사교 모임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한동안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지만 도박과 사치로 재산을 모두 잃었다. 한편 독설적인 말버릇으로 왕세자를 비난하기도 했는데 결국 1812년에는 언쟁으로까지 발전했다. 이것 때문에 곧바로 사교계에서의 지위가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빚이 계속 늘어 1816년 5월 16일 빚쟁이들을 피해 칼레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14년 동안 살았지만 항상 빚에 쪼들렸다. 1830~32년 캉 주재 영국 영사를 지냈다. 1835년 빚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가 또다시 친구들의 도움으로 풀려났으며, 친구들은 그에게 자그마한 수입원을 마련해주었다. 그는 곧 옷에 흥미를 잃고 되는 대로 지저분하게 지냈으며 과거에 대한 환상 속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2번이나 중풍으로 쓰러진 뒤 1837년 캉에 있는 봉 소뵈르 자선수용소에 들어가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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