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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포해전

다른 표기 언어 釜山浦海戰

요약 1592년 한산도와 안골포해전을 통해 제해권을 장악한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부산포로 향했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의 연합함대 166척은 거북선을 앞세우고 화준구포·다대포·서평포·절영도 등을 거치면서 적선 24척을 불지르고, 적의 병선 470여 척이 줄지어 있는 부산포 내항으로 돌진했다. 아군이 적선을 불태우며 쳐들어가자 배에 탄 군사들과 육지 위의 일본군들이 산으로 도망쳐 올라가 총포와 화살을 난사했다. 이순신은 상륙하여 싸우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일본병선 100여 척만을 파괴하고 함선을 가덕도 방향으로 돌려 동도 앞바다에 돌아와 진을 치고 밤을 새웠다. 이 전투에서 죽은 일본군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반면, 조선군 피해는 6명의 전사자와 25명의 부상자뿐이었다. 이후 일본군은 해전을 꺼리고 육상전으로 전환했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해전에서 승리를 거듭한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특히 한산도와 안골포해전을 통해 제해권을 장악했다. 그뒤 이순신은 일본군의 근거지인 부산을 공격해서 일본군의 본국과의 연락을 두절시키기 위해, 그해 8월 24일에 부산포로 향했다.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와 함께 전라좌우도의 전선을 거느리고 출전해 중도에서 경상우수사 원균을 만나 일본군에 대한 소식을 물은 뒤 함께 낙동강 하구로 나아갔다.

9월 1일에 조선의 연합함대 166척은 화준구포·다대포(多大浦)·서평포(西平浦)·절영도(絶影島:지금의 부산 영도) 등을 거치면서 적선 24척을 불지르고, 이어서 일본병선 470여 척이 줄지어 있는 부산포 내항으로 거북선을 앞세우고 전함대가 돌진했다. 이때 우부장 정운(鄭運)과 거북선돌격장인 이언량(李彦良)을 비롯하여 전부장 이순신(李純信)과 중위장 권준(權俊), 좌부장 신호(申浩) 등이 앞을 다투어 적선을 불태우며 쳐들어가 일본전선에 있는 적병을 쳤다. 그러자 배에 탄 군사들과 육지 위의 일본군들이 산으로 도망쳐 올라가 총포와 화살을 난사했고, 조선군은 적선을 쳐부수었다.

이순신은 상륙하여 싸우려다 불리할 것으로 판단, 적을 완전히 섬멸하지 않은 채 일본병선 100여 척만을 파괴하고 함선을 가덕도 방향으로 돌려 동도(同島) 앞바다에 돌아와 진을 치고 밤을 새웠다. 이 전투에서 죽은 일본군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반면, 조선군 피해는 6명의 전사자와 25명의 부상자뿐이었다. 조선 전사자 중에는 우부장인 녹두만호 정운이 있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본거지를 기습당했기 때문에, 그뒤 일본군은 해전을 꺼려 육상전(陸上戰)으로 전환했다.→ 임진왜란

부산포

현재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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