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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찰서투탄의거

다른 표기 언어 釜山警察署投彈義擧

요약 1920년 9월 14일 의열단원 박재혁이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사건.

1919년 11월, 일제 고관의 암살과 주요관공서 파괴를 목적으로 김원봉(金元鳳)을 중심으로 조직한 의열단은 1920년 3월부터 본격적인 의열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의열단이 계획한 제1차 활동은 실행에 옮기기 전에 일제 당국에 의해 탐지되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밀양·진영 사건), 윤세주(尹世胄)·이성우(李成宇) 등 16명의 의열단원이 부산경찰서에 투옥되었다. 의열단의 제2차 계획은 치밀하게 진행되었는데, 그것이 박재혁의 부산경찰서투탄의거로 나타났다.

박재혁은 일찍부터 상하이를 비롯하여 싱가포르 등지를 왕래하면서 무역을 하는 한편 망명한 우국지사들과도 사귀었다. 1920년 7월 그는 의열단에 정식으로 입단하고, 거사대상으로 많은 동지가 체포되어 있던 부산경찰서를 택했다. 1920년 8월 김원봉은 싱가포르로 전보를 쳐서 그곳에서 무역에 종사하고 있던 박재혁을 상하이로 소환하여, 부산경찰서를 폭파하고 서장을 암살할 것을 지시했다.

상하이를 출발하기 전 부산경찰서장 하시모도[橋本秀平]가 고서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여, 고서적상으로 가장하기 위해 고서를 한 짐이나 준비하고, 9월 13일 부산에 들어왔다. 9월 14일 중국인 고서상으로 변장한 그는 부산경찰서를 찾아가 서장의 면회를 청했다. 얼마 후 서장의 허락으로 서장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장과 마주앉은 그가 고서 보따리를 풀어놓자 서장은 정신없이 고서적을 뒤적이며 구경했다.

그는 먼저 전단을 보인 다음 유창한 일어로 서장을 꾸짖었다. "나는 상하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 네가 우리 동지를 잡아 우리 계획을 깨뜨린 까닭에 우리는 너를 죽이려는 것이다"라고 말을 마치자마자 서장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큰 폭음과 함께 둘이 쓰러졌는데, 서장은 병원으로 가는 도중 사망하고 박재혁은 중상을 입은 채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이로 인해 부산경찰서가 대파되고, 서장 이외에 일본 경찰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는 재판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으나, 일제의 손에 죽느니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는 것이 옳다는 신념하에 단식을 시작하여 9일 만인 1921년 5월 27일 대구감옥에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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