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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5(고종 32), 부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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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1. 5. 27, 대구 |
국적 | 한국 |
요약 독립운동가.
부산진보통학교와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무역상회의 고용인으로 일하다가 1917년 상하이[上海]로 가서 무역업에 종사했다. 이때 중국에서 민족주의 독립운동가, 특히 김원봉과 친분을 가지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1920년 8월 상하이에서 김원봉이 주도한 비타협적·폭력투쟁 노선의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했다. 당시 의열단은 암살 대상으로 조선총독 및 고관, 군 장성, 친일파 거두 등 소위 7가살(七可殺)을 정하고, 파괴대상으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등을 정해 철저한 응징을 가할 것을 결의하고 이를 행동에 옮겼다. 이에 따라 같은 해 9월 13일 부산경찰서 파괴의 임무를 띠고 짐 속에 폭탄을 숨겨 나가사키[長崎]를 거쳐 부산으로 들어왔다.
14일 부산경찰서를 방문해 서장 하시모토[橋本秀平]에게 고서를 보여준다고 속인 다음 짐 속의 폭탄을 꺼내 던졌으나, 두 사람 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서로 부상만 당한 채 일경에 붙잡혔다. 1921년 3월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 언도를 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고문과 폭탄 파편에 의한 상처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단식을 감행해 그 후유증으로 옥사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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