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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5세기에 중반 보헤미아에서 후스파의 영적 이상주의에 영감을 받아 생겨난 종교단체.
(영). Unity of Brethren.
성서를 신앙의 유일한 규준으로 삼으면서, 소박하고 겸손한 비폭력의 삶을 추구했다.
화체설(化體說)을 부인하기는 했지만, 성찬을 인정했으며 찬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1501년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찬송가집을 발행했으며, 1579~93년 체크 문학에 일획을 긋는 사건이라 할 수 있는 〈크랄리체(크랄리츠) 성서 Kralice Bible〉를 펴냈다. 루터교와 칼뱅주의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는 〈보헤미아 신앙고백서 Confessio Bohemica〉를 발표해 1575년 루터교의 후스파와 연합하게 되었고, 이 연합체는 1609년 신성 로마 제국의 재가(裁可)를 받았다(→ 보헤미아 신앙고백). 당시 보헤미아에 사는 프로테스탄트들의 반 정도가 보헤미아 형제단이었으며, 모라비아에는 그보다 더 많았다. 16세기 중반 보헤미아 형제단원들은 폴란드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약 2세기 동안 살았다. 페르디난트 1세와 싸움(30년전쟁)에서 체크의 여러 계급들과 합류한 보헤미아 형제단 군대는 1620년 백산 전투(白山戰鬪)에서 패배했는데, 이 패배는 그들이 받게 될 박해의 서곡이었다. 1627년 신성 로마 제국은 모든 프로테스탄트들에게 법의 보호를 박탈하는 칙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보헤미아 형제단은 자신들의 교회·성서·찬송가집과 더불어 멸절되고 말았다. 형제단원들은 강제로 가톨릭교도가 되거나 추방당했다. 남은 자들은 결국 작센 지방으로 피신했고, 이들은 '헤른후터파'(Herrnhuters)라는 이름으로 선교활동을 하며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모라비아 교회와 복음주의 체크 형제교회의 기원은 보헤미아 형제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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