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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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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 일대에 제일 먼저 정착한 것은 산족이다. 그후 1600년경에 소토족이 현재의 보츠와나에 이주해왔다. 1801년 초창기 유럽 원정대가 이 지역을 답사했고, 1813년 런던 선교회가 쿠루만 강변에 선교본부를 세웠다.

1821년에 로버트 모펫이 선교 책임자가 되었다. 바로 그무렵, 줄루족 군대에 쫓긴 수천의 피난민이 보츠와나에 들어와 약탈을 자행했으며, 음질리카지가 이끄는 은데벨레족이 줄루족에서 이탈, 서부 트란스발에 정착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여러 해에 걸쳐 보츠와나를 공격했으며 1837년 보어인들에게 패한 후에도 계속 보츠와나를 괴롭혔다. 보어인들은 1835년 케이프 식민지로부터의 대이동시 보츠와나 국경지대까지 밀려들어오기도 했다.

1867년에는 타티 강 유역에서 금이 발견되어, 1884년 이 지역 일대가 영국의 베추아날란드 보호령이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몰로포 강 남부지역이 영국직할 식민지가 되었고 10년 후에는 케이프 식민지에 합병되었다(→ 대영제국). 베추아날란드는 1960년대까지 영국의 보호령으로 남았다. 1961년에는 기존의 식민지 판무관제도 대신 행정 및 입법 위원회 제도가 도입되었다. 1965년에는 헌법에 따라 최초의 총선거가 실시되어 베추아날란드(보츠와나) 민주당이 총 31개 의석 중 28개 의석을 차지했다.

1966년 9월 30일 보츠와나 공화국은 영연방 내의 독립국으로 선포되었고, 이어 국제연합(UN)의 회원국이 되었다. 보츠와나는 1970년대 경제적으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의존하고 정치적으로는 주변 아프리카 흑인 국가들과의 선린을 다지기 위해 줄곧 노력했으며, 1970년대말에는 보츠와나와 잠비아를 잇는 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 또한 같은 기간중 보츠와나는 로디지아 난민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으며, 1980년 짐바브웨가 독립하기 직전 짐바브웨 인민혁명군 게릴라들의 거점 구실을 하기도 했다.

보츠와나 레쿠부(LeKubu)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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