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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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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즈에는 BC 300경∼AD 900년 마야 문명이 번영했다. 카라콜과 수난투니치의 유적을 비롯해서 마야의 의식이 행해지던 터가 아직 남아 있다.

마야인들의 사회가 최대로 팽창했던 6세기 이후 얼마 동안은 인구가 2만 5,000명가량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은 명목상 주권을 쥐고 있기는 했으나 벨리즈를 식민지화하려 하지 않았으며, 그러면서도 이곳에 정착한 영국인들을 불법침입자로 여겼다. 17세기 중반 대부분이 해적단과 모험가였던 영국 선원들이 세인트조지스케이에 정착해 염료원료인 로그 우드(logwood)를 베어갔다. 이 로그우드는 한동안 벨리즈 제1의 수출품이었으나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마호가니가 주종을 이루었다(→ 대영제국).

영국의 식민이 여러 조약에서 인정받았고, 스페인은 무력으로 영국 점령지를 차지하려 했으나 1798년 싸움서 패배해 물러났다. 영국인 개척자들은 해안의 목재가 고갈되자 내륙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인디언들의 저항으로 19세기에는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노예들은 벌목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카리브 해의 설탕농장 노예들에 비해 좋은 조건에 있었는데 1838년에 해방되었다.

1862년 당시 벨리즈는 영국의 직할식민지로서 영국령 온두라스라고 불렸다. 1859년 영국과 과테말라 사이에 체결된 조약의 규정이 이행되지 않자 과테말라는 영국령 온두라스를 요구했고, 1981년 영국이 벨리즈의 독립을 승인했을 때에도 여전히 이러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벨리즈는 영연방에 가입했으나, 미주기구(OAS)에는 들지 못했다.

마스크 사원, 라마나이에(Lamanai)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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