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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47. 11. 18, 프랑스 카를라르콩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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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706. 12. 28, 네덜란드 로테르담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철학자.
그의 저서 〈역사와 비판 사전 Dictionnaire historique et critique〉(1697)에는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을 파괴하도록 교묘히 꾸며진 수많은 주석이 달려 있었기 때문에 로테르담의 프랑스 개혁교회와 프랑스 가톨릭 교회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칼뱅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669년에 잠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가정교사 노릇을 하다가 스당의 프로테스탄트 아카데미에서 철학을 가르쳤다(1675~81). 1681년에 로테르담대학으로 옮겨 철학과 역사를 가르치다가, 1680년에 나타난 혜성에 대한 의견을 익명으로 발표하여(1682) 혜성이 재난의 전조라는 미신을 비웃었다. 많은 그리스도교 전통에도 의문을 제기하여 칼뱅파 동료 피에르 쥐리외를 격분시켰다. 심지어 무신론자들에게도 종교적 관용을 베풀자고 호소하여 마침내 쥐리외는 벨이 그리스도교를 가장한 무신론자라고 확신했다.
벨이 루이 14세의 반칼뱅주의적 정부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자 쥐리외와 벨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졌다. 결국 벨은 1693년에 로테르담대학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그뒤 벨은 유명한 〈역사와 비판 사전〉 집필에 몰두했는데, 이 사전은 겉보기에 루이 모레리의 사전을 보충하는 부록이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독창적인 저작이었다. 이 백과사전식 저서에 수록된 종교·철학·역사 등에 관한 항목들 자체는 요약 설명에 불과하다. 〈역사와 비판 사전〉은 거의 인용문·일화·주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해박한 주석은 각 항목에 포함된 정통성을 교묘히 무너뜨리고 있다. 특히 '다윗' 항목, 피론주의적 회의주의, 무신론, 쾌락주의 등에 대한 호의적 태도, 성서를 인용하여 '외설'을 소개한 것 등은 맹렬한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정통설에 대해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방식은 18세기에 백과전서파에 의해 다시 채택되었다.
벨은 철학적 추론을 거듭하면 결국 보편적 회의주의에 도달할 수밖에 없지만 자연은 인간에게 눈먼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고 확신했는데, 이러한 견해는 18세기초에 큰 인기를 얻었다. 만년에 벨은 영국 및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있는 네덜란드를 동맹 체제에서 떼어내기 위해 프랑스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큰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그가 죽자 그의 적도 친구도 모두 위대한 지성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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