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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3. 9. 7, 미국 아이오와 워털루 근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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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5. 4. 10, 뉴욕 이타카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역사가.
초기 미국 지성사(知性史)와 18세기 계몽주의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역사편찬).
1893년 매디슨 주(州) 위스콘신대학교에 입학해 역사학자 찰스 호머 해스킨스와 프레더릭 잭슨 터너 밑에서 공부했다. 석사과정 일부는 컬럼비아대학교의 제임스 하비 로빈슨 아래에서 밟았다(1898). 1902~16년 로렌스 시(市) 캔자스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1917~41년 뉴욕 주 이타카의 코넬대학교에서 가르쳤다. 〈미국인의 출발 The Beginnings of the American People〉(1915)은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발전시킨 것으로, 미국혁명이 자치정부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인 동시에 미국의 정부 형태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투쟁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혁명전야 The Eve of the Revolution〉(1918)·〈독립선언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1922)에서는 18세기 자연권사상과 미국혁명 사이의 관계를 규명했다.
제1·2차 세계대전 시기는 그에게 낙담과 철학적 회의의 시기였다. 특히 1920년대에 그는 역사연구에서 과학적 방법론을 우위에 두는 당시의 전통적 입장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식된 '사실'(事實)들은 기본적으로 역사가 자신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정신적 영상이며 더 넓게는 역사가의 자료선택과정을 결정하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현실이라 주장했다.
1931년 미국 역사학회 회장으로서 행한 연설인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역사가'(Everyman His Own Historian:1932년에 발표되고 1935년에 내용을 추가하여 책으로 출판되었음)는 이러한 역사적 상대주의 주제를 명확하게 다루고 있다. 유명한 저서들 가운데 하나인 〈18세기 철학자들의 천국 The Heavenly City of the Eighteenth Century Philosophers〉(1932)에서 베커는 진보와 인간의 완전함을 믿는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사상과 지적 열정을 고찰했고, 계몽주의자들이 전통 그리스도교 신앙과 계몽주의의 세속성 사이를 성공적으로 연결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초기의 회의주의에서 벗어나 역사 서술에 도덕적인 내용을 삽입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했다(→ 역사철학). 그는 역사 전공자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광범하게 영향을 주었던 대중적인 역사가였다(→ 필로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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