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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403. 1. 2, 터키 트라페준타 제국 트레비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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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472. 11. 18, 이탈리아 라벤나 |
국적 | 비잔티움 |
요약
비잔티움의 인문주의자·신학자.
본명은 Basil Bessarion.
후에 로마의 추기경이 되었으며, 15세기의 문예부흥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423년 수사가 되었다. 1437년 비잔티움 황제 요안니스 8세 팔레올로고스가 그를 니케아(지금의 터키 이즈니크)의 대주교로 임명했다. 그는 당시 발칸 반도를 침략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위협했던 투르크인들에 대항해, 군대 원조를 받고자 비잔티움 교회와 서방교회의 연합을 협상할 목적으로 요안니스 황제와 함께 이탈리아로 갔다.
페라라와 피렌체 같은 이탈리아 도시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베사리온은 연합을 지지했으나 다른 비잔티움 교회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로마 교회와 계속 친교를 가졌으며, 교황 에우제니오 4세의 총애를 받아 1439년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베사리온은 이탈리아에 살면서 로마 역사학회와 고고학회 발전에 이바지했으며, 1442년 유명한 신플라톤주의자이며 스승이었던 게미스투스 플레톤과 함께 그리스 문학과 플라톤 철학 연구를 위하여 피렌체에 '플라톤 학술원'(Accademia Platonica)을 설립했다. 1450~55년 볼로냐의 교황청 장관으로 있으면서, 1471년 프랑스 왕 루이 11세에게 갔던 일을 비롯해 외국의 여러 왕에게 대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당시 매우 학식있는 학자였던 그는 사설 도서관을 지어 많은 그리스어 사본을 소장했고, 학자들을 후원했으며, 직접 저술활동을 함으로써 그리스어와 그리스 학문에 대한 지식을 전파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도서관을 베네치아 의회에 기증했다.
146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트라페준타의 요르고스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항해 플라톤을 옹호한 논문인 〈In calumniatorem Platonis〉이다. 플라톤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던 그는 이탈리아 철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탈리아 철학은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멸망한 뒤 비잔티움의 철학 전통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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