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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8, 평북 의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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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1 |
국적 | 한국 |
요약 독립운동가.
이명은 운곡.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의주군 고령면 영산장터에서 만세시위 운동을 주도했다.
그해 만주로 망명해 류허 현[柳河縣] 싼위안푸[三源堡]에서 박장호·조맹선·백삼규 등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인 대한독립단에 가입해 항일운동에 투신했다. 같은 해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위해 대한독립단 총재 박장호로부터 선전문서와 자동권총을 받아 평양으로 잠입했다. 평양에서 대한독립단 국내지부를 설치하고, 김영선·정현조 등에게서 자금을 모집하고 대한독립단 재무부장 명의의 수령증을 교부했다.
그해 10월 김근하·이명서·함일 등과 함께 평양의 일제기관을 파괴하는 한편 평안도 각지를 왕래하며 군자금을 모집하고 친일파를 숙청했다. 평안북도 의주군 가산면 가송동에서 김용국·김치규 등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고, 12월 용천군 읍동면에 거주하는 친일분자 최시준 형제를 처단했다. 1920년 3월 15일 우승창·주상옥 등과 함께 친일분자인 선천군 태산면장 김병준과 면서기 김은기를 처단하고 공금을 군자금으로 몰수했다. 같은 해 4월 다시 평양의 일제기관을 습격하자, 일본 경찰은 그의 부인 차씨를 고문해 죽였다.
1921년 7월 독립단본부로 돌아가는 길에 관뎬 현[寬甸縣] 상러우거우[上漏溝]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그해 10월 24일 신의주지방법원과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언도를 받았다. 평양감옥소에 수감 당시 총독 사이토[齋藤實]에게 장문의 경고문을 보내고 순국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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