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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주

다른 표기 언어 白樂疇 동의어 학범, 學範, 세창, 世昌, 운기, 雲起, 백호대장, 白虎大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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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8. 12. 18, 평북 정주
사망 1965. 12. 19
국적 한국

요약 독립운동가.

본관은 수원. 자는 학범, 호는 세창(世昌). 일명 운기(雲起)·백호대장(白虎大將). 아버지는 병제(昺濟)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정주에서 적극 참여했으며, 같은 해 7월 만주로 건너가 류허 현[柳河縣] 삼원보에서 박장호·조맹선(趙孟善)·백삼규 등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인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재무감독이 되었다. 대원들과 더불어 일본영사관·강립회·일민회(日民會)·보민단(保民團) 등의 친일단체를 습격하고 친일 주구 숙청에 주력했다.

1920년 7월 독립소대장으로 임명되어 싱징 현[興京縣] 융링제[永陵街]에서 펑톈[奉天] 일본영사와 일제의 주구기관인 보민회 회장 백형린(白衡麟) 등을 사살하고 30여 만 원의 거액을 탈취했다. 일본군의 경신 대학살 이후 독립군의 근거지가 동요되었을 때, 1921년 싱징 현 번시 호[本溪湖] 푸순[撫順] 방면의 외무감독으로 임명되어 지방 수복공작에 착수했으며 권덕근(權德根)·나정규(羅正奎) 등과 함께 혈성대를 조직하고 대장이 되어 약 5년 동안 일제관청과 친일단체를 공격했다. 1923년 대한통의부가 조직되자 법무부원으로 활동했으며, 1926년 국내에 잠입, 군자금모집 활동을 하다가 만주로 돌아왔다.

1927년 일본 관헌의 추격을 받게 되자 서자의(徐子義) 등과 함께 몽골의 도남현(桃南縣)으로 피신했다가, 다음해 만주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1928년 3월 공성환의 밀고로 일경에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되었다. 1심공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공소,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8·15해방을 맞이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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