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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5경

다른 표기 언어 渤海五京

요약 발해 지방제도의 하나.

발해의 5경제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안팎에 알리기 위해 고구려의 5부를 상징하는 5경을 설치했다는 설과, 음양오행사상의 영향과 당의 4경제도에 대한 대항의식에서 5경을 설치해 지방행정의 중심도시로 삼았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는 광대한 영역에 여러 민족들이 흩어져 사는 복합민족국가였던 발해가 주요지방에 행정중심도시를 건설하고, 이 도시를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했기 때문에 성립된 제도로 보고 있다.

위치

발해5경 중 일부 도시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어 확실한 비정은 내려지지 않았으나, 유적발굴을 통한 대략적인 추정은 이루어지고 있다.

상경용천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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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용천부:제3대 문왕대에 잠시 수도가 되었다가 제5대 성왕대인 794년 이후 멸망 때까지 130여 년 간 수도로 번영했다. 지금의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닝안 현[寧安縣] 동경성 지역을 그 옛 터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멸망 후 발해 옛 터를 다스리기 위해 거란에 의해 세워진 동단국의 수도가 되어 천복성으로 불리기도 했다. 〈요사 遼史〉에는 이곳이 홀한하 옆에 있다고 하여 홀한성으로 표기되었다.

중경현덕부:제3대 문왕대초의 수도였으며 상경과 함께 발해의 2대 도시로 각광을 받았다. 발해는 현재의 지린 성[吉林省] 둔화 현[敦化縣] 육정산 지역에 산성을 쌓고 2대 무왕대에 이르기까지 이곳에서 기반을 닦은 후, 3대 문왕대에 근처의 서고성자 지역에 중경을 세우고 수도를 옮겼다. 중경의 위치에 대해서는 종래 여러 설이 제기되어 정설이 없다. 후이파 강[輝發河]과 북류 쑹화 강[松花江]의 합류지점인 나단포로(Nadanforo)설, 현재의 지린 성 화뎬 현[樺甸縣]에 있는 소밀성설, 둔화현설 등이 제시되었고 이 가운데 둔화현설이 가장 유력했다. 그런데 최근 하이란 강[海蘭河]과 조양천 사이의 서고성자 유적의 발굴로 인해 그 규모가 상경용천부 유적에 버금감이 확인되어 현재는 서고성자설이 정설화되고 있다.

동경용원부:제3대 문왕의 치세 후기(781~793)부터 제5대 성왕대까지 발해의 수도였다. 〈신당서 新唐書〉 발해전에는 동경이 상경의 동남쪽 바다 가까운 곳에 있다고만 되어 있어 1930년대말까지 정확한 위치비정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1940년대초 두만강에 가까운 간도의 훈춘 현[琿春縣] 팔련성 유적의 발굴로 정교한 도시구획자리와 다수의 발해시대 유물이 발견·수습됨으로써 현재는 이곳을 동경용원부의 옛 터로 비정하고 있다.

남경남해부:〈신당서〉 발해전에는 남경의 위치에 대한 언급이 없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이 〈강역고 疆域考〉에서 함흥설을 제기한 이래 여러 학자에 의해 함경북도 경성설, 종성설, 북청설 등 각종 설이 제시되었으나 문헌·유적 등에 의한 구체적인 뒷받침은 없었다. 근래에 들어 함흥 일대에서 발해관계 유물이 잇달아 발견되고 있어 함흥이 남경일 가능성이 크다.

서경압록부:문헌에는 서경의 위치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정약용이 〈강역고〉에서 평안북도 자성북안을 서경의 위치로 비정한 이래, 압록강 북안의 퉁구 설[通溝說], 퉁화[通化] 근처의 린장 강 설[臨江說] 등이 제시되었으나 정설이 없다. 서경·남경은 5경 가운데 수도가 되지 못했던 도시로 상경·중경으로 이어지는 대외 교통상의 요지로 번영했다.

발해5경과 주요교통로

발해의 5경은 중앙·지방 행정의 중심도시이자 주요교통로의 기점이었다. 상경현덕부는 왕도(王都)로서 북방로와 나머지 4경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의 출발점이었다. 동경용원부는 두만강을 따라 내려가 동해를 항해하여 일본의 쓰루가[敦賀]를 비롯한 북륙(北陸) 지방의 여러 항구로 이어지는 일본도(日本道)의 출발지였으며 남경남해부는 함경산맥·태백산맥 동편의 해안지대를 따라 국경지대인 이하(泥河)를 지나 신라로 들어서는 신라도(新羅道)의 시발점이었다. 〈고금군국지 古今郡國志〉에 의하면 발해의 책성부(柵城府:지금의 훈춘[運春])에서 남경남해부를 거쳐 신라의 천정군(泉井郡:지금의 덕원)에 이르는 교통로에는 모두 39개의 간이역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서경압록부에서 당(唐)으로의 조공도(朝貢道)가 시작된다. 당으로 가는 조공사절은 상경에서 중경으로 나아가 임강 및 퉁구 지방을 거친 뒤 압록강 하구에서 바다로 랴오둥[遼東] 반도의 남단 뤼순[旅順]을 거쳐 묘도열도(廟道列島)를 따라 발해만을 횡단했다. 그후 산둥[山東] 반도의 등주에 상륙해 당의 수도 장안(長安)으로 갔는데 발해와 당에서는 이 길을 조공도라 불렀다. 발해와 당 사이의 교통로로는 중경에서 장령부(長嶺府)를 거쳐 영주를 지나는 영주도(營州道)도 있었으나 거란을 비롯한 이 일대 유목민의 위협으로 안전하지 않아 잘 이용되지 않았다. 이밖에 주요교통로로는 부여부(夫餘府)를 거쳐 거란에 이르는 거란도가 있었으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한편 왕도인 상경에서 북으로 헤이룽 강 하류지대의 흑수말갈(黑水靺鞨)에 이르는 길도 있었으나 이 길에 특정한 명칭이 붙여졌는지는 알 수 없다. 흑수말갈로 이어지는 북방로를 제외한 일본도·신라도·조공도·영주도·거란도는 발해의 5도로 불린다.→ 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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