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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11. 10. 25, 작센 랑겐후르스도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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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87. 5. 7, 미국 미주리 세인트루이스 |
국적 | 미국 |
요약 정통주의 신학자.
미국 루터교 미주리 시노드의 초기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837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1839년 마르틴 슈테판과 작센인 집단을 따라 미주리로 옮겨, 페리 카운티에서 목회하면서 통나무로 만든 신학교에서 가르쳤다.
슈테판이 간음죄로 추방당한 뒤 작센인 집단을 이끌었는데 그 집단이 1847년에 세운 교단의 의장이 되어 1850년까지 일했고, 1864~78년에 의장직을 다시 한번 역임했다. 그밖에도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콘코르디아 신학교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1850~87).
그가 1844년에 창간한 정기간행물 〈루터교 신자 Der Lutheraner〉는 근본주의적이며 보수주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중서부의 많은 루터교인들을 규합했다. 그는 선택과 예정·교회·율법·복음 등의 교리에 대해 다른 루터교 집단들과 논쟁을 벌였고, 이 문제들에 대해 많은 글을 썼다. 성서의 문자적 해석, 복음주의 교회의 신앙고백, 종교개혁 이후 독일에서 발전한 스콜라 신학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던 그는 자신이 정통 루터교를 대표한다고 믿었다.
그가 미국에 도착한 지 1세기가 지났지만 미국 루터교 신자의 1/3에 해당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아직까지도 발터를 자신들이 속해 있는 교단인 루터교 미주리 시노드의 영적인 대부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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