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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46, 일본 야마구치 현[山口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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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6 |
국적 | 일본 |
요약 일본의 군인.
을미사변의 배후조종자이다. 호는 관수(觀樹). 야마구치 한[藩]의 무사인 기치헤이[吉平]의 둘째 아들이며, 뒤에 미우라 미치이오[三浦道庵]의 양자가 되었다.
어려서 명륜관(明倫館)에서 공부했고 조슈 한[長州藩]의 존양운동(尊攘運動)에 참가했다. 1870년 병부 권소승(權少丞)이 된 이후, 이듬해 육군소장, 1878년 육군중장, 1882년 사관학교장 등을 지냈다. 1884년 서구 및 미국의 병제를 시찰했으며 자작(子爵)의 작위를 받았다. 1888년 예비역에 편입되어 궁중고문관이 되었으며 1890년 귀족원 의원이 되었다.
1895년 삼국간섭으로 조선에서 일본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여 친일내각을 무너뜨리고 친러내각을 구성하자,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의 후임으로 특명전권공사로 조선에 왔다. 같은 해 10월 8일 일본인 자객을 앞세우고 경복궁으로 쳐들어가 명성황후를 학살하고 유길준 등의 친일파를 중심으로 한 제4차 김홍집(金弘集) 내각을 구성했다. 명성황후 학살사건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일어나자 히로시마[廣島] 지방재판소의 예심에 회부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곧 풀려났다. 1910년 추밀원 고문관이 되었으며 정계의 원로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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