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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원래 미궁이란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지하나 반지하에 지었던 것으로서 수많은 방과 통로들이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조로 배치되었던 건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뒤 특히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에는 높은 울타리로 갈래를 이룬 길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정원에서 미궁 또는 미로를 볼 수 있었다.
플리니우스는 고대의 4대 미궁인 이집트 미궁, 크레타 미궁, 렘노스 미궁, 이탈리아 미궁의 특징을 설명했다. 중세의 미궁은 프랑스 대성당들의 바닥에서 자주 볼 수 있고, 그 도안 속에 건축자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조경에서 말하는 미궁 또는 미로는 중심부나 출구를 찾기 어렵도록 울타리나 나무로 둘러싸 복잡하게 만든 오솔길 구조를 일컫는다.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미궁 가운데 하나인 햄프턴 코트 궁전 정원의 미궁은 윌리엄 3세 때 만들어졌다. 프랑스에는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훌륭한 미궁이 있었다.
원래 미궁이란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지하나 반(半)지하에 지었던 것으로서 수많은 방과 통로들이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조로 배치되었던 건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뒤 특히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에는 높은 울타리로 갈래를 이룬 길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정식 정원에서 미궁 또는 미로를 볼 수 있었다.
플리니우스는 고대의 4대 미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 이집트 미궁:헤로도토스와 스트라보의 서술에 의하면 아르시노에 고대의 유적지 즉 크로코딜로폴리스의 맞은편, 모에리스 호수 동쪽에 이집트의 미궁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집트 학자들에 따르면 '미궁'이라는 단어는 '호수 입구에 있는 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곳은 건물 전체가 하나의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12개의 저택과 지하 1,500개, 지상 1,500개 등 모두 3,000개에 달하는 방이 있었다. 지붕은 전체가 돌로 만들어졌고, 벽은 조각작품으로 장식되었으며, 한쪽 면에는 약 74m 높이의 피라미드가 서 있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위층의 방들은 직접 둘러보았으나 지하의 방들은 구경할 수 없었다.
그가 전해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지하에는 미궁을 건축하도록 한 왕들의 무덤과 신성한 악어들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또다른 고대 연구의 권위자들 가운데에는 그 미궁이 고대 이집트 주(州) 대표들의 모임이나 정치적 모임을 위한 장소로 건축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보다는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더 크다.
미로를 건축한 것은 BC 1842~1797년 이집트를 통치한 12대 왕조의 아메넴헤트 3세였다.
이집트의 학자 K. R. 레프시우스에 의해 미궁이 파이윰 지방 하와라 북쪽에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으며, 1888년에는 플린더스 페트리에 의해 길이 305m, 너비 244m의 건물 기초가 발견되었다. ② 크레타 미궁:이집트인의 설계에 따라 다이달로스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크레타의 미궁은 미노타우로스 신화에 등장해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로 존재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초기의 저술가들은 이 미궁이 크노소스 부근에 있었다는 기록을 남겼고, 또 미궁의 모습이 동전의 그림 도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의 발굴조사과정에서는 왕궁의 건설계획이 있었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클로디언 같은 후기 저술가들은 미궁의 위치를 고르티나 근처로 보고 있지만, 그 근처에 있는 몇 개의 복잡한 통로와 방들은 실제로 고대의 채석장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③ 렘노스 미궁:건축법이 이집트 미궁과 비슷하며 150개의 기둥이 있다. ④ 이탈리아 미궁:클루시움에 있는 포르세나 왕의 무덤 지하에 많은 방들이 매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 무덤은 키우시 근처에 있는 포지오가젤라라는 고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중세의 미궁은 프랑스 대성당들의 바닥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도안 속에 건축자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19세기에 파괴되었으나 그후에 복원된 아미앵 대성당의 미궁에서는 건축자들의 이름이 나타나 있는 시(詩)가 발견되기도 했다. 미궁 중앙에는 하얀 대리석 표면 속에 주교(主敎)와 3명의 건축가들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중세의 미궁들이 실제로 존재했었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해명되지 않았다.
조경(造景)에서 말하는 미궁 또는 미로는 중심부나 출구를 찾기 어렵도록 울타리나 나무로 둘러싸 복잡하게 만든 오솔길 구조를 일컫는다.
이와 같은 미궁의 구조는 고대의 기하학적 조경을 모방한 것인데, 보다 일반적인 형태의 미궁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고 촘촘한 울타리들이 평행으로 늘어서 그 가운데로 일정한 폭의 길이 이어진다. 과거에는 이 길을 오솔길(alley)이라 불렀다.
이와 같은 미궁에서의 과업은 독특하게 표시해놓은 중심에 도달한 후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표시를 알고 있던 사람도 길을 찾지 못해 혼란에 빠지기 쉽다. 궁 가운데에는 1706년 런던앤드와이즈출판사에서 발간한 미궁 설계도에 나타난 것처럼 오솔길만 있는 것도 있다. 1742년 스위스터출판사가 펴낸 미궁 설계도는 좀더 거창한 모습을 보여준다. 6개의 입구 가운데 단 1개만이 중심부로 통하는데, 그것을 찾으려면 많은 장애물과 막다른 길을 거쳐야 한다.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미궁 가운데 하나인 햄프턴 코트 궁전 정원의 미궁은 윌리엄 3세 때 만들어졌다.
울타리와 오솔길로 이루어진 이곳에 처음에는 서어나무를 심었다가 이후에 다시 서양감탕나무·주목 등으로 바꾸어 심었다고 한다. 중심부에 도달하려면 먼저 입구에서 왼쪽으로 향한 뒤 첫번째와 2번째 갈림길에서는 오른쪽을 택하고, 그후로는 계속 왼쪽을 택해서 나아가면 된다. 영국 동부 서퍽 주의 로스토프트 근처 소멀리턴 홀에 있는 정원의 미궁은 존 토머스가 설계한 것이며, 그곳의 주목 울타리는 1880년경에 세워진 것이다.
18세기에도 스펜서 백작의 저택인 윔블던하우스에 미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에는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훌륭한 미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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