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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5, 함북 경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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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2. 10 |
국적 | 한국 |
요약 중국 팔로군(八路軍) 지휘관 출신의 조선인민군 제2군단장.
본명은 김무정. 14세 때 3·1운동에 참가했으며, 그후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8세 때 퇴학당했다. 중국으로 건너가 1924년 북방군관학교에 입학, 포병과를 졸업했으며, 1925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1934년 중국공산당의 대장정(大長征)에 참가, 조선인 10여 명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아 중국혁명과 관련된 명성을 굳히게 되었다. 1937년 팔로군 총사령부 작전과장이 되고, 그해말에는 중국 최초의 포병부대인 팔로군 포병단 단장이 되었다.
1941년 한인들로 구성된 '화북조선청년연합회'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1942년 이 연합회의 성격을 분명히 해 이름을 '화북조선독립동맹'으로 바꾸고 산하의 군대조직인 조선의용군을 결성해 사령관을 지냈다. 8·15해방 후 귀국해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2비서를 지내기도 했다.
1946년 2월 조선인민군의 전신인 보안간부훈련대대가 만들어지면서 포병담당 부사령관이 되었고, 1948년 조선인민군 창설 이후에는 제2지휘소 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6·25전쟁 초기에는 조선인민군 제2군단장을 역임했다. 후퇴시에는 평양 방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950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명령불이행, 부하에 대한 불법 총살형 등의 이유로 격렬한 비판을 받고 직위를 박탈당했다. 1952년 10월 위장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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