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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초기 이슬람 신학파의 하나.
(영). Murjites.
신만이 이슬람교도가 믿음을 잃었는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보고 중죄를 범한 사람들에 대한 판결의 연기(irjā)를 믿은 최초의 이슬람 종파이다.
무르지아파는 656년 제3대 칼리프 우스만의 살해로부터 시작되어 661년 제4대 칼리프 알리의 암살 및 그에 이어지는 우마이야 왕조(~750 통치) 건립으로 끝나는 이슬람 역사의 혼란시기에 번성했다. 이 기간 동안 이슬람 공동체는 이슬람교(islām)와 이만, 즉 활동 업무와 믿음의 관계에 대한 논쟁 때문에 적대적인 파벌로 갈라졌다.
가장 호전적인 무리인 하와리즈파는 중죄자들은 공동체에서 제거되어야 하며, 그들에게는 '성전'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견해 때문에 이 신학파의 지지자들은 우마이야 왕조를 부패하고 불법적인 통치자로 간주해 그들에게 반항했다. 이와는 반대로 무르지아파는 일단 이슬람교를 믿은 사람은 아무리 중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이교도(kāfir)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슬람 통치자에 대한 어떠한 반란도 정당화될 수 없었다.
무르지아파는 이슬람 세계를 갈라놓는 논쟁에서 중립을 지켰으며 정당하지 못한 통치자에 대해 무장 반항을 하기보다는 소극적 저항을 옹호했다. 우마이야 왕조는 이러한 견해를 찬양하고 고무했는데, 그들은 무르지아파의 정치적 침묵과 종교적 인내를 그들 체제에 대한 지지로 여겼다. 그러나 무르지아파는 자신들이 우마이야 왕조에 관대한 것은 종교적 입장과 법과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무르지아파는 이슬람의 온건한 자유주의자들로 신의 사랑과 관대함을 강조했고 자신들을 '약속에 충실한 자'라고 불렀다. 그들에게는 밖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반드시 개인의 내적인 믿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었다. 잠 이븐 사프완(746 죽음)과 같은 소수 극단주의자들은 믿음을 순수하게 내적인 확신이라고 생각해, 오직 신만이 진정한 믿음의 본질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이슬람교도가 외견상으로는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공언하면서도 여전히 이슬람교도일 수 있음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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