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

중세 세속음악과 대부분의 민속음악, 비서구 음악에서는 노래와 더불어 악기 반주가 뒤따랐는데, 선율을 유니즌(unison：같은 음높이의 중복)이나 옥타브로 중복해 연주하는 형태였고 때로 선율을 약간 변형하여 이선율(heterophony)적인 짜임새를 만들기도 했다(이선율적 음악이란 같은 선율을 다양한 형태로 변형하여 동시에 연주하는 것). 독자적인 리듬을 갖거나 목관악기 또는 현악기로 지속음을 연주하기도 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독창을 류트로 간단히 반주했고, 수직화음적 양식과 대위법적 양식이 모두 쓰였는데, 영국의 작곡가 존 다울런드의 노래들과 프랑스의 에르 드 쿠르(airs de cour：궁정의 노래) 등이 그 예이다.

17세기초에는 계속저음(숫자저음)이 도입되었다. 계속저음은 화성적 짜임새로 된 반주 양식으로, 하프시코드나 오르간 등으로 즉흥연주하며 작곡가가 악보에 숫자로 표시해놓은 기본 화음들을 토대로 만들었다.

18세기에 이르면 계속저음 반주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소나타나 솔로 칸타타에서처럼 독창자를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되거나, 또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오페라에서처럼 기악 합주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기악 합주용으로 사용될 때에는 연주자가 고도의 장식적인 기교와 대위법 기술을 갖추어야 했고, 따라서 반주는 독주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계속저음 반주에 적용하기 시작한 오블리가토 반주라는 말은, 자유반주(ad libitum accompaniment：성부 장식의 일종으로, 연주자가 임의로 특정 악기나 성부를 추가하거나 생략할 수 있음)의 반대 의미이다(오블리가토). 때로는 악보로 기보하기도 하는데, 바흐의 플루트와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B단조는 원래 오블리가토 반주로 즉흥연주된 음악을 악보로 기보한 것이다.

18세기 후반에 오블리가토 반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여 점차 음악적 복잡성과 내용을 더해갔고, 이에 대해 독주 악기는 자유반주의 역할로 축소되었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가 동시대 작곡가인 요한 쇼버트의 곡을 예로 삼아 작곡한 하프시코드를 위한 4개의 소나타들은 하프시코드에 의한 오블리가토 반주가 바이올린에 의한 자유반주보다도 음악적으로 더 중요했다.

18세기말 오블리가토 양식의 영향은 "나는 오블리가토 반주와 함께 세상에 태어났다"라는 베토벤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오블리가토 양식은 19세기에도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독주곡·협주곡에서 계속 사용되어 이 시기의 반주를 더욱 정교하고 표현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피아노 반주의 경우, 슈베르트의 리트(독일 가곡) 반주는 피아노의 표현 능력으로 인해 노래말의 회화적·심리적 양상들을 그릴 수 있었고, 슈베르트에 이어서 슈만, 브람스, 후고 볼프가 리트를 작곡했다. 한편 현악기나 목관악기들을 위한 곡에서 피아노 반주는 협주곡의 독주 악기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관현악 반주는 낭만 협주곡이나 관현악 반주에 의한 가곡 및 연가곡에서 놀라운 발전을 거두었고 그 예는 엑토르 베를리오즈(1803~69), 알반 베르크(1885~1935), 벤저민 브리튼(1913~76)의 곡들이다. 피아노 반주기법은 주로 19세기 독일 리트와 프랑스 멜로디(mélodie：19~20세기 프랑스의 반주 붙은 노래)의 음악적 요구에 부응하여 발전했다. 이 노래들은 노래말과 음악이 빼어나고 노래와 반주의 합주방식도 기교적이어서 자연히 피아노 반주가 부각되었고, 마치 20세기 실내음악의 연주 기교와 비슷했다.

20세기에 이르러 영국의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 네덜란드의 피아니스트 쿤라드 발렌틴 보스와 같은 반주자들은 독주자 보조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보였을 뿐 아니라 작곡가의 의도를 잘 파악했다. 이들은 반주법에 대한 귀중한 저서들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