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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현재는 아프가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에 일부씩 걸쳐 있는 지역이다. BC 750년경 철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BC 600경~AD 600년경 동서양간의 상업과 문화가 교류하는 지역이었다. 고대 유적으로 제방과 수로들이 많아 번영을 누렸다는 증거로 남아있다. 아케메네스 왕조가 지배하면서 기록을 남겼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점령하였고, 그 후 셀레우코스 왕조, 안티오코스 등이 이 지역을 지배하였다. 전성기 때는 파키스탄 지역까지 지배 영역을 넓혔고, 헬리니즘이 이들을 따라 확산되었다. BC 2세기에는 월지족 지배하였고, 4세기 후반에는 에프탈족이, 7세기 중반에는 이슬람 세력이 지역을 정복하였다.
지금은 아프가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의 일부이다. BC 600경~AD 600년경에 동서양간의 육로통상뿐만 아니라 종교적·예술적 사상들이 교류하는 지역으로서 매우 중요했다. 수도는 박트라였는데 박트라자리아스파(고대의 발리카, 지금의 발흐 지역으로 추정됨)라고도 불렸다.
박트리아는 비옥한 땅이었으며 제방과 못쓰게 된 수로들이 많아 고대에 누렸던 이곳의 번영을 말해준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철기시대부터로 발흐와 홀름(타슈쿠르간) 지역에서 그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이것들은 BC 75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그곳에 살았던 동부 이란어를 쓰는 사람들의 유물로 보인다.
박트리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것이다. 이 지역은 BC 6세기에 키루스 2세 대왕에게 정복된 듯하며 그 뒤 200여 년 동안 아케메네스 왕조의 영토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다리우스 3세를 격파했을 때 박트리아의 사트라프 베수스는 동부의 저항군을 조직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BC 323) 박트리아는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의 지배를 받았다.
BC 250년경 셀레우코스 왕조의 박트리아 사트라프 디오도토스 또는 같은 이름의 그의 아들이 독립왕국을 세웠다. 이들을 뒤이은 찬탈자 에우티데모스를 셀레우코스 안티오코스 3세가 격퇴했으나 안티오코스는 그의 독립성을 계속해서 인정해 주었다. 에우티데모스의 후계자들은 힌두쿠시 산맥과 인도 북서부로 진출했으며 그곳에 인도 그리스 계통의 왕국을 세웠다(→ 인도-그리스 왕국). 그들은 전성시대에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중앙 아시아 일부, 파키스탄의 많은 지역을 지배했다. 이에 따라 헬레니즘은 중앙 아시아와 인도 북서부 지역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헬레니즘의 전통은 예술·건축·주조화폐·서체(書體)등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BC 128년 이전에는 중국인에게 월지족으로 알려진 종족이 힌두쿠시 북부를 공략하곤 했다. BC 128년 그리스인들은 월지족의 속방이 되었고 얼마 안 있어서 월지족은 박트리아를 정복했다. 그들은 이란계 사람들로 보이며 그들 중에는 토차리족이 있었다. 토차리라는 이름은 뒤에 이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토차리 왕국).
AD 1세기에 박트리아의 새로운 통치자들은 인도 북서부까지 지배영역을 확장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쿠샨 왕조와 관련이 깊다(→ 쿠샨족). 그들의 지배 아래에서 박트리아는 불교 중심지가 되었다. 4세기 후반에는 에프탈족이 박트리아에 정착해 거의 2세기 동안 사산 왕조와 전쟁을 계속했다. 565년 에프탈족을 무너뜨린 서쪽의 투르크인들이 7세기 중반 이슬람교도가 정복할 때까지 이 지역을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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