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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40. 1. 28, 프랑스 비에르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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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15. 12. 18, 파리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정치평론가·정치가.
'파리 코뮌'(1871)을 주도한 혐의로 추방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사회당의 핵심인물이 되어 왕성한 의정활동을 전개했다.
처음에는 공학에 뜻을 두었으나 의학으로 전공을 바꿔 파리·하이델베르크·튀빙겐·빈에서 수학했다. 프로이센 군대의 파리 점령기 동안 논설을 통해 오귀스트 블랑키의 사상을 유포시켰다.
1871년 3월 18일 파리 봉기에 참여한 뒤 혁명정부인 코뮌의 위원으로 활동했으나 코뮌이 붕괴되자 영국으로 망명해 1891년 9월 제1인터내셔널의 총회에 몸담았고 카를 마르크스와 회동했다. 1872년 인터내셔널의 미온적인 혁명노선에 불만을 품은 바이양은 동료 블랑키주의자들과 함께 인터내셔널을 탈퇴했다. 1872년 7월 바이양은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880년 특사가 단행된 이후에야 비로소 귀국할 수 있었다.
바이양은 1904년까지 블랑키주의자들과 활동했다. 1884년 지방의회에 진출했으며 189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국민의회에서 파리 시를 대표했다. 의회에서 8시간 노동제와 포괄적인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을 주장한 그는 1898년 무렵에는 의회 내 블랑키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바이양은 1905년 사회주의 제세력들이 통합을 이루기 시작했을 때, 탁월한 지도자였던 장 조레스와 협력하여 1914년까지의 사회주의자 대회를 주관했다. 확고한 평화주의자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조국을 방위하는 것이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의무임을 대내에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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