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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65. 3. 27, 독일 바이에른 뮌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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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41. 5. 23, 뮌헨 |
국적 | 독일 |
요약 로마 가톨릭 평신도, 유력한 신비주의 신학자, 에큐메니컬 운동가(→ 신학).
1820년 광산기술자라는 안정된 직업을 그만두고, 정치와 종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교회일치와 정치적 통합을 위한 그의 초기 노력은 1815년 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프랑스 사이의 안전협정인 신성동맹을 결성하는 데 이바지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에 맺어진 이 동맹은 대규모 전쟁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국가로 구성된 세계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 결국 이 동맹은 실패로 끝났으나 바더는 훗날 근대 에큐메니컬 운동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1826년 신학을 더 깊이 공부한 뒤 새로 세워진 뮌헨대학교의 철학·사변신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이 대학에서 '뮌헨 동우회'를 구성한 다른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에오스 Eos〉(그리스어로 '새벽'이라는 뜻)라는 잡지를 발행했다.
그는 뛰어난 교수였지만, 종교분야 강의는 성직자들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한 법령 때문에 1838년 이후에는 종교에 대한 강의를 할 수 없었다. 불분명한 격언과 상징들로 표현된 그의 신비철학은 이성의 영역을 권위와 계시의 영역과 연결시키려 한 것이었다. 경제 및 정치 분야에서 보수주의자였던 그는 교황청을 교회 통치에 필수적인 요소로 보는 데는 반대했으나 보편적인 가톨릭 교회가 다스리는 공동체가 이상적인 국가라고 생각했다. 바더의 〈전집 Sämtliche Werke〉(1851~60)은 16권으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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