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바누아투의 역사

다른 표기 언어

현재 바누아투를 이루고 있는 북부 섬 대부분에는 적어도 3,000년 전부터 멜라네시아인들이 거주해왔다(→ 멜라네시아 지리적 인종). 방사성 탄소를 사용하여 남부 섬에서의 절대 거주연대를 측정한 결과, BC 420년경에 타나 섬에 사람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606년 포르투갈의 해양탐험가 페드루 페르난데스 데 키로스가 이곳을 처음으로 발견했고, 그후 프랑스의 탐험가 루이 드 부갱빌이 재발견했으며(1768), 제임스 선장이 스코틀랜드의 헤브리디스 제도를 따서 명명하고 지도를 만들었다(1774).

19세기 중반에 백단향 판매상들과 유럽 선교사들이 들어왔으며 그후 1868년경 주로 영국프랑스의 목화 재배업자들이 들어왔다. 영국과 프랑스 간의 이권다툼은 이 제도를 관리하기 위해 합동해군단을 창설함으로써 해소되었다(1887). 1906년 양국은 공동통치 정부를 세우기로 합의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고등판무관을 임명하여 공동통치 정부의 수도였으며 지금은 바누아투 공화국 수도인 에파테의 빌라에 상주하던 판무관들을 통해 권한을 행사하게 했다. 이러한 공동통치는 멜라네시아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했으나 1914년의 의정서(1922 승인)에 따라 양국은 자국교포들에 대한 책임을 갖게 되었다. 이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중 일본의 침략을 모면했으며 연합군의 주요기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토지소유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지방정치가 시작되었는데, 그당시 뉴헤브리디스 영토 중 1/3 이상을 외국인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지역별로 정당이 세워진 뒤 대표제의회(1974∼77)를 구성했으나 곧 해체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뉴헤브리디스 대표들이 참석한 1977년의 파리 회담에서 독립에 합의한 뒤 1979년에 선거를 치르고 헌법을 제정했다.

1980년 중반 나그리아멜당(黨) 지도자 지미 스티븐스는 이 제도 나머지 지역으로부터 에스피리투산토 섬을 독립국가로 세우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뉴헤브리디스는 1980년 7월 30일 '조국이여 영원하라'라는 뜻의 바누아투 공화국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바누아투 원주민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오세아니아

오세아니아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바누아투의 역사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