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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포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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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일드프랑스(몽포르라모리)에 있던 고대 영지와 관련된 가문.

이 영지는 몽포르 가문이 13세기에 뛰어난 여러 인물들을 배출함으로써 비로소 유명해졌고, 그뒤 이곳의 지배권은 카페 왕가의 작은 갈래인 드뢰 가문으로 넘어갔는데, 드뢰가에서는 14~15세기에 브르타뉴 공작들이 여럿 나왔다.

몽포르라모리는 이곳에 성을 지은 아모리, 또는 아말리크(1053경 죽음)의 이름에서 나온 지명으로, 아모리의 아버지는 위그 카페에게서 이 지역 통치권을 인정받았다. 아모리의 손자 시몽(1181 또는 그뒤에 죽음)은 잉글랜드의 레스터 백작령을 이어받은 아미시아와 결혼했다.

이 가문은 알비파(派)에 대한 성전에서 활약한 그들의 아들 시몽 드 몽포르 때 처음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시몽은 아내 알리스 드 몽모랑시와의 사이에 4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즉 몽포르라모리를 상속하고 랑그도크 지방에서 아버지가 갖고 있던 작위를 물려받은 아모리 드 몽포르(1241 죽음), 영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레스터 백작 시몽 드 몽포르, 기 드 비고르(1220 죽음), 로베르(1226 죽음)가 그들이다(→ 몽포르).

아모리 드 몽포르는 루이 8세와 싸워서 졌기 때문에 랑그도크에 대한 모든 권리를 잃었으나, 그 대신 컨스터블(왕이 없을 때 총지휘관이 되는 중세 최고관) 자리에 올랐다(1231). 1239년 성지에서 이슬람교도에게 붙잡힌 그는 2년 뒤 풀려나 프랑스로 돌아오던 중 풀리아의 오트란토에서 죽었다. 형과 함께 십자군에 참여해 자라와 시리아에 가기도 했던 그는 알비파 정벌전에서 크게 활약해 라바스탕과 생탕토냉 지방의 봉토를 받았으나, 랑그도크 지방에 대해 갖고 있던 권리를 1226년 프랑스 왕실에 넘겨주었다.

아모리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장 드 몽포르(1249 죽음)의 외동딸 베아트리스(1312 죽음)는 1259년 드뢰 백작 로베르 4세와 결혼했다. 이들의 딸인 욜랑드(1322 죽음)는 1285년 스코틀랜드 왕 알렉산더 3세와 결혼했고 그뒤 브르타뉴 공작 아르튀르 2세와 재혼해 몽포르 가문의 땅은 브르타뉴 공작가로 넘어갔다. 욜랑드와 아르튀르의 아들 장 드 몽포르(1345 죽음)는 형들에게서 몽포르 작위만 받았는데, 뒤에는 블루아 백작 샤를과 브르타뉴 공작령을 놓고 겨루기도 했다. 결국 장의 아들이 게랑드 조약(1365)에 따라 브르타뉴 공작 장 4세가 되었다.

장 4세와 그의 후손들인 장 5세(1442 죽음)·프랑수아 1세(1450 죽음)·피에르 2세(1457 죽음)·아르튀르 3세(1458 죽음)·프랑수아 2세(1488 죽음)는 몽포르 가문을 형성해 대대로 브르타뉴 공작을 지냈다. 그러나 프랑수아 2세는 브르타뉴의 (1514 죽음) 말고는 자식이 없었고 그녀는 프랑스 왕 샤를 8세 및 루이 12세와 2번 결혼했다. 그녀가 2번째 결혼에서 얻은 딸 클로드와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가 결혼함으로써 몽포르 가문의 영지는 프랑스 왕실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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