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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세말 성상(聖像)과 벽화를 그린 러시아의 주요화파.
1400년경에서 16세기말에 모스크바에서 꽃피웠다.
노브고로트파를 이어 러시아의 유력한 화파가 되었으며 마침내 국민예술 양식의 기초를 발전시켰다. 13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를 대부분 점령했던 몽골인들을 격퇴하는 데 모스크바가 앞장서게 되면서 노브고로트 및 다른 예술 중심지들과 마찬가지로, 한 지역예술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의 전통적 전제군주정치로 인해 처음부터 사실적이고 설화적인 것보다는 추상화된 종교적 표현이 우선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다.
모스크바파는 그리스인 화가 테오파네스의 영향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꽃피우게 되었다.
테오파네스는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노브고로트에서 러시아의 양식과 정신을 받아들였으며, 1400년경 노브고로트에서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그의 그림은 복잡한 구성, 미묘한 색상의 아름다움, 자신이 깊이 인상받은 인물들에 대한 유연한 인상주의적 묘사 등으로 당시의 다른 그림들을 훨씬 능가했다. 그의 업적은 곡면(曲面)에 대한 결정적 의미를 모스크바 화단에 심어준 것이다.
중세 러시아의 가장 뛰어난 화가이며 수도승인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테오파네스의 계승자로 숭고하고 우아한 양식의 그림을 그렸는데 이것은 스승에게서도 물려받지 않은 것이었다. 그가 스승에게 받은 것은 예술적인 뛰어남에 대한 집념이었다. 그는 선의 정교함과 야광색채에 중점을 두었고, 구성의 효과를 강조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세부사항을 없애고, 그려진 형태들 사이를 미묘하고 복합하게 구성했다.
루블료프 그림의 요소들이 15세기의 모스크바 회화 중 대부분의 좋은 작품에 나타나 있다.
루블료프의 사후 1430년경에서 15세기말 사이에 모스크바는 명성이 높아지고 세련된 도시가 되었으며, 모스크바 대공국의 군주들은 마침내 몽골인들을 몰아내고 노브고로트를 포함한 중앙 러시아 대부분의 도시를 통합하여 그들의 지배 아래 두었다. 그후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투르크족에게 함락되면서 러시아 정교회 중심지인 모스크바가 잠시 실질적인 동방교회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새로운 성향을 작품에 나타낸 화가는 평신도이며 주요화가에 속하는 디오니지였다. 그의 작품구성은 영성(靈性)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지성에 더 기반을 두었는데 이것은 테오파네스나 루블료프의 구도보다 더 인상적이다. 또 인물들을 윤곽만으로 과감하게 단순화시키고, 공간을 분리하면서도 그 공간들이 확장되어나가는 효과를 갖게 하여 늘어나고 떠오르는 듯한 효과를 준다.
이것은 이전의 러시아 화가들이 애용했던 조밀한 구도를 깨뜨린 것이다. 색상은 짙은 청색과 자주색에 대조되는 청록색·연녹색, 담홍색 등 엷은색을 사용했다. 화법은 장면의 극적 내용에 신비로운 것을 강조해내는 것이다.
러시아 정교회가 새로운 명성을 얻게 되자 전통적 소재에 대한 신비적 해석이 전례없이 진지해졌고 16세기 중반경에는 신비스러운 일들, 종교적 의식, 교리 등을 자세히 설명하는 새로운 교훈적 도상법을 기초로 교회가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16~17세기에 이미 확립된 일반적인 전통양식이 계속해서 이어졌으나 성상은 점점 작아지고 조밀하게 그려져 질이 점차 떨어졌다.
16세기말경에는 이전의 명성이 많이 사라지고 화려한 장식으로 대체되어 그 우아함을 잃어버렸다. 17세기 초기에는 모스크바의 뛰어난 예술가들의 모임인 이른바 스트로가노프 화파가 러시아 중세예술의 마지막 시기에 지도적 위치를 떠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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