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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2. 5. 10, 프랑스 에피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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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0. 2. 10, 파리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사회학자·인류학자.
교환양식과 사회구조의 관계에 대한 독창적인 비교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민족학 이론과 방법에 관한 그의 견해는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와 A. R. 래드클리프 브라운, E. E. 에번스 프리처드, 멜빌 J. 허스커비츠 등의 여러 명의 뛰어난 사회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모스는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켐의 조카로서 지적 성장과정에서 그에게 많은 도움을 얻었다.
〈자살론 Le Suicide〉을 비롯한 뒤르켐의 많은 저작들의 준비작업을 도왔으며 뒤르켐이 〈사회학연보 L'Année Sociologique〉를 편집하고 있을 때 조수 노릇을 했고 나중에는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1902년 파리에 있는 에콜 프라티크 데 조트 제튀드(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의 원시종교학교수가 되었다. 그후 파리대학교 민족학연구소를 세웠으며(1925)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를 지냈다(1931~39). 모스는 민족지와 언어학 분야에서 유례없이 폭넓은 지식을 갖춘 백과사전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의 강의는 새롭고 생산적인 사상을 풍부하게 담고 있어서 여러 저작과 논문에 영감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몇 년 동안 정치활동에도 몸담았던 그는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유명한 법정투쟁을 지원하고 사회당 당수인 장 조레스와 제휴했으며 사회당 기관지 〈위마니테 L'Humanitté〉의 창간을 돕기도 했다(1904).
모스는 현지조사 작업을 한 적은 없었지만 프랑스의 사회학자·철학자·심리학자들이 민족학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원시사회의 사물에 대한 관점을 가려내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이를 통해 그 관점들의 신선함과 특이함을 살려내는 한편 심리학과 인류학의 연관관계를 강화시켰다. 초기 논문으로 〈희생제의 본질과 기능에 관한 시론 Essai sur la nature et la fonction du sacrifice〉(1899)이 있다.
〈증여론 Essai sur le don〉(1925)은 가장 중요한 저서로 꼽힌다. 이 책은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북아메리카 북서부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교환 및 계약방식을 중심으로 주고받는 행위가 갖는 종교·법률·경제·신화적 측면을 비롯한 여러 부분을 탐구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듯이 모스의 접근방법은 사회현상의 제한된 단편을 그 체계적인 전체성 가운데서 파악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 모스는 주술·자아개념·장례식 같은 주제에 관해서도 글을 썼다. 〈사회학과 인류학 Sociologie et anthropologie〉(1950)은 1904~38년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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