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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1. 1. 26, 일본 나고야[名古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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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9. 10. 3, 도쿄[東京] |
국적 | 일본 |
요약 일본의 기업인.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가정용 전자제품 제조업체인 소니사(社)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1971~93), 이사회 회장(1976~94)으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실업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집안 대대로 양조업을 하던 양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사카제국대학에 입학해 1944년 물리학 학사로 졸업했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가업인 양조장을 맡기기 위해 경제학을 공부하라고 종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이었던 군 복무 시절 전시연구위원회의 산업분과 대표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를 만나 함께 열유도장치 등의 개발을 위해 일했다. 전후에는 이부카와 함께 통신연구소를 도쿄에 설립하는 한편 도쿄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그를 비롯한 여러 장교 출신 전역자들은 곧 강단에 서는 것이 금지되었다.
1946년 모리타와 이부카는 도쿄통신공업[東京通信工業]을 공동 설립했으며, 1958년 이 회사의 이름을 소니사로 바꾸었다. 모리타의 마케팅 수완과 이부카의 기술력이 결합되어 곧 일본 최초의 녹음기가 탄생했다. 1953년 그들은 트랜지스터의 사용권을 획득하고, 2년 뒤 일본의 첫 트랜지스터 라디오인 TR-55를 생산했다. 이것은 소니라는 브랜드 명이 처음으로 붙은 제품이었다. 1957년 소니사는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했다. 회사측에서는 호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다고 선전했으나, 실제는 그보다 약간 커서 나중에 소니사의 영업사원들은 호주머니를 더 크게 만든 셔츠를 입고 판촉 활동을 해야 했다. 1960년 소니사는 트랜지스터 텔레비전을 개발했고, 1968년 혁신적인 트리니트론 컬러 텔레비전을 생산했다.
1975년 소니사는 베타맥스(Betamax) 비디오 카세트 리코더(videocassette recorder/VCR)를 개발했는데, 가정용 VCR로서는 최초로 성공을 거둔 제품이었으나 뒤에 VHS 방식에 밀려났다. 이와 달리 깨지지 않은 성공 사례로, 걸어다니며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개인용 스테레오 카세트 플레이어(1979), 이른바 ' 워크맨'(Walkman)과, LP 비닐 레코드를 사실상 사멸시킨 콤팩트 디스크 플레이어(1982)를 들 수 있다. 이후 소니사는 영역 확장에 나서 1988년 CBS레코드그룹을 매입했고, 1989년 컬럼비아영화사를 사들였다.
모리타는 주로 소니사의 재정과 영업을 담당했는데, 전세계적으로 소니 제품의 마케팅에 대한 책임을 맡았다. 그가 이끈 소니사의 위대한 성공은 바로 '미국화'의 성공이었다고 일컬어지는데, 미국의 광고대행사에 의뢰해 신상품의 시장개척을 유도한 점이나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등지에 현지공장을 설립한 것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1963년 모리타의 지휘 아래 소니사는 일본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뉴욕 증권거래소에 등록되었다. 모리타는 여러 방면에서 소니사를 보다 더 국제적인 기업으로 만드는 데 기여해왔다.
1981년 그는 일본의 심각한 무역불균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연구하는 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 1987년에는 자서전 〈메이드 인 저팬 Made in Japan〉이 발간되었다. 1993년 모리타는 발작으로 인해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듬해에는 이사회 회장 직도 내놓았다.→ 소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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