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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려·조선시대 임금이 제례(祭禮) 때 착용한 관복.
개요
한국에서는 이를 국왕의 조근(朝覲) 및 봉사의 복(奉祀之服)이라 하여 종묘·사직 등에 참예하여 제사하고, 정조(正朝)·동지(冬至)·조회(朝會)·수책(受冊)·납비(納妃) 등에 착용하는 관복으로 삼았다.
유래
면복은 고대 중국에서 생겨난 것으로 5,000년 전 황제가 면복을 제도화하여 이로써 귀천의 등급을 나누었다. 이어 순제(舜帝) 때 곤룡포(袞龍袍:또는 袞服)에 표시되어 있는 장문(章紋)을 12장문으로 만들었으며, 이것을 제복·대례복으로 완성하여 한족의 관복으로 만든 것은 후한(後漢)에 이르러서이다.
〈후한서 後漢書〉 〈명제본기 明帝本紀〉에 따르면, 영평 2년 정월 광무제를 명당에 제사했을 때 명제와 공경·제후가 비로소 관면의상(冠冕衣裳)을 착용했다고 한다. 중국의 주변 민족들이 이것을 제왕의 관복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당(唐) 이후 한족의 문화권이 광대해지고, 중국 북쪽의 변방 왕들에게 면복을 하사하면서 가능해졌다.
한국에서는 고려 1043년(정종 9) 거란주(契丹主)가 면복을 보내와서 국왕이 착용하기 시작했으며, 의종 때에 이르러 신하들에게도 직급에 따른 면복을 제도화했으나 시행되지는 못한 듯하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명나라에서 받아온 면복을 국왕이 착용해오다가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국내에서 만들어 착용하게 되었다.
구성
〈국조오례의 國朝五禮儀〉 〈서례 序例〉의 제복도설(祭服圖說)에 나와 있는 조선시대 왕의 면복인 9류면·9장복은 면류관과 곤룡포이다.
면류관
면관 또는 평천관으로도 불리며, 곤룡포에 갖추어 쓰는 예모이다. 겉은 검고 속은 붉으며, 위에 직사각형의 큰 판이 있는데 이것을 연이라 한다. 뒤쪽은 올라갔고 앞쪽은 내려왔다. 연의 앞뒤에 구슬을 꿰어 매단 것을 유라 하며, 구슬 12개를 꿰어 매단 12류를 연의 앞뒤에 늘어뜨렸다. 또한 이 구슬을 꿰는 끈을 굉이라 하며, 굉의 끝에는 작은 구슬을 매달았는데, 이 작은 구슬을 진이라 한다. 유의 수는 황제가 12류, 왕은 9류, 상대부는 7류, 하대부는 5류로 되어 있었으나 송대 이후 상대부 이하는 유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곤룡포
보통 곤복이라고 하며, 의(衣)·상(裳)·중단(中單)·폐슬(蔽膝)·혁대(革帶)·대대(大帶)·패옥(佩玉)·수(綏)·말·석(舃)으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에 규(圭)를 든다. 곤복의 특징은 장문(章紋)에 있으며, 장문에는 일(日)·월(月)·성신(星辰)·산(山)·용(龍)·화충(華蟲)·종이(宗彛)·조(藻)·화(火)·분미(粉米)·보(黼)·불(黻)의 12장문이 있다.
① 의:청색과 흑색에 약간 적색이 섞인 현색 증(繒)으로 만들었으며, 양 어깨에는 용을, 등에는 산을, 양소매에는 화·화충·종이를 그렸다.
② 상:무릎 앞에서 뒤까지 가리는 의이다. 3염(染)이라 하여 나온 훈색 증으로 만들었으며, 전3폭 후4폭의 7폭으로 되어 있다. 폭마다 삭폭(削幅)이라 하여 양쪽 가장자리를 1촌씩 꿰매었고, 허리 사이에는 주름을 많이 잡았다.
옆 준(純:緣)인 벽(綼)과 아래 준인 석(緆)의 넓이는 각각 1촌 반으로 겉과 안을 합쳐서 3촌으로 하고, 조·분미·보·불의 4장문을 수놓았다. 의와 상을 합치면 9장문이 되므로 왕의 곤복을 9장복이라고 한다.
③ 중단:백색 증으로 만들었으며, 청령(靑領)에는 불문(黻紋) 11개를 그렸고, 도련과 수구에 청선(靑繏)을 둘렀다.
④ 폐슬:무릎 앞을 가리는 장방형의 의이다. 훈색 증으로 만들었으며, 위에는 비(紕), 아래에는 준(純)이라는 연식(緣飾)이 있었고, 양 갓 안쪽에 순(紃)이라 하여 5색의 띠를 둘렀으며, 위에서 5촌 밑으로 조·분미·보·불을 수놓았다.
⑤ 혁대:제복도설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혁대에는 폐슬·옥패·수를 걸게 되어 있어 곤룡포의 옥대로 대용했다고 볼 수 있다.
⑥ 대대:백색과 비색의 증으로 만들었으며, 대단(帶端)은 늘어뜨려 신(紳)으로 삼았다.
⑦ 패옥:좌우 1개씩 차게 되어 있었으며, 옥패 위에 금구(金鉤)가 있고, 다음에 형(衡), 가운데에 거(琚)와 우(瑀), 밑에 쌍황(雙璜)이 있으며, 쌍황 사이에 충아(衝牙)가 있고 또 충아와 쌍황 사이에 쌍적(雙滴)이 있었는데 모두 민옥(珉玉)을 사용했다.
그리고 5줄의 계조(繫組)에는 약옥주(藥玉珠)를 꿰었고 옥패 받침으로 6채로 짠 소수(小綬)가 딸려 있었다.
⑧ 수:수는 홍화금(紅花錦)으로 만들었으며 대수 밑에는 사망(絲網)이 달려 있다. 또한 3개의 소수가 대수 위에 드리워져 있고 2개의 금환(金環)을 간시(間施)했다.
⑨ 말:겉은 비색 단으로 하고 안은 비초(緋綃)로 했다.
⑩ 석:말과 마찬가지로 겉은 비색 단으로 했으나 안은 백증(白繒)으로 했으며, 말·석에 모두 기대(綦帶)가 있었다.
⑪ 규:길이 9촌, 넓이 3촌의 청옥규로서, 〈국조속오례의보 國朝續五禮儀補〉 〈서례 序例〉의 옥규도설에 의하면 나중에는 백옥규도 사용했다고 한다.
⑫ 방심곡령:백색 나(羅)로 만들었으며, 양 옆에는 영(纓)이 있어 좌영은 녹색, 우영은 홍색으로 했다.
한편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제정한 12류면·12장복에 대해서는 〈대한예전 大韓禮典〉에 잘 나타나 있으며, 9류면·9장복과의 차이를 밝혀내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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