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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1. 1.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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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6. 5. 16, 이탈리아 산레모 |
국적 | 오스만 |
요약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
본명은 Mehmed Vahideddin.
1922년 강제로 폐위되고 망명함으로써 1년 이내에 케말 파샤가 이끄는 터키 공화국이 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영리하고 통찰력있는 그는 1918년 7월 4일 제위에 올라 형 아브둘하미드 2세(1876~1909 재위)의 선례를 따라 혼자서 정부를 장악하려 했다.
1918년 10월 30일 무드로스 휴전이 성립되고, 12월 8일 이스탄불에 연합국의 군사정권이 수립되자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단체인 '통일진보위원회'는 붕괴되고, 그 지도자들은 해외로 도피했다. 술탄은 모든 민족주의 이념에 반대하고 오스만 왕조의 영속을 갈망해 연합국의 요구에 순순히 따랐다. 12월 21일 의회를 해산하고 민족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케말 파샤의 지도로 아나톨리아에서 조직되고 있던 민족주의자들은 영토보전과 민족독립을 위한 투쟁에 술탄도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협상 끝에 메메드는 선거에 동의했으며, 1919년말 선거가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민족주의자들은 승리했고 새 의회에서 다수당이 되었다. 터키인들이 단결할 전망이 보이는 데 놀란 연합국은 콘스탄티노플의 점령지역을 확대하고 민족주의자들을 체포·추방했다.
메메드 술탄은 다시 의회를 해산하고(1920. 4. 11), 민족주의자들은 앙카라에 임시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메메드가 세브르 조약(1920. 8. 10)에 서명함으로써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터키만으로 축소되어 민족주의자들의 명분은 더욱 강화되었다. 민족주의자들은 그리스를 패퇴시킨 후 터키를 더욱 확고히 지배했다. 1922년 11월 1일 대국민회의는 술탄 제도를 폐지했다. 16일 후 메메드 6세는 영국 전함을 타고 말타로 도피했다. 그뒤 헤자즈에서 칼리프가 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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