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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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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71. 5. 7, 런던 화이트홀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청교도 혁명 때 활약한 의회파 장군.
Viscount Mandeville, Baron Kimbolton of Kimbolton이라고도 함.
맨체스터 백작 1세 헨리 몬터규(1563~1642)의 아들이며 캠브리지대학교의 시드니 서식스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1624~26년 헌팅던셔를 대표하는 의원을 지냈고 1626년에는 킴볼턴 남작으로서 귀족 지위를 얻었는데 대체로 맨더빌 자작으로 알려졌다. 장기의회가 열렸을 때 상원에서 국왕 찰스 1세의 반대파 지도자가 되었으며 하원의원 5명과 함께 1642년 국왕에게 반역죄로 기소당했다.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자 1642년 11월 아버지의 백작작위를 물려받은 그는 에식스 백작의 군대에 들어가 1개 연대를 지휘했다.
1643년 9월 동부의 몇몇 주에 있는 의회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는데 올리버 크롬웰이 그의 부사령관이었다. 1644년에는 양 왕국 위원회의(Committee of Both Kingdoms) 위원이 되었고 1644년 7월 2일 총사령관으로 전투에 참가해 마스턴 무어에서 왕당파군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해 늦게 크롬웰과 의견이 엇갈렸으며 11월 전쟁을 계속하는 것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크롬웰은 의회에서 그의 결점들을 폭로했고 1645년초 맨체스터는 지휘관직을 사임했다. 그는 찰스 1세와 협정을 맺기 위한 여러 번의 협상을 주도했으며 윌리엄 렌탈과 함께 국새관리를 맡았다(1647~48).
그는 왕을 재판하고 처형하는 것에 반대했고 공화정치 시기에는 공직생활에서 은퇴했다. 그러나 그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왕정복고가 이루어지자 찰스 2세는 그에게 경의를 표했고 1667년 장군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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