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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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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 아르메니아 콜키스 |
요약
축일은 서방교회 2월 24일, 동방교회 8월 9일. 예수를 배반한 이스가리옷 유다를 대신하여 1세기에 유대에서 활동한 사도(사도 1:21~26).
개역성서에서는 맛디아라고도 함.
예수의 12사도(원래 이스라엘에는 12지파가 있었음) 선택은 십자가 처형 뒤 교회가 계속해나갈 상징적인 선교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마티아는 예수가 세례를 받던 때부터 승천할 때까지 예수와 사도들을 따라다녔으며,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선택할 때 사도들은 마티아와 또다른 후보자 성 요셉 바르사바(Barsabbas)를 놓고서 제비를 뽑았다.
성 예로니모와 초기 그리스도교 저술가들 중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오에 따르면 마티아는 예수가 짝지어 파견한 72명의 제자들 가운데 1명이었다고 한다. 마티아는 사도로 뽑힌 직후에 다른 사도들과 함께 성령을 받았다(사도 2:1~4). 그뒤로는 〈신약성서〉에 언급되지 않는다.
마티아는 1세기 유대에서 활동하다가 그뒤 외국 여러 곳을 다니면서 선교를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다. 그리스 전승에 따르면 오늘날 터키 중앙에 해당하는 산악 지역 카파도키아에 그리스도교를 전하고, 후에는 카스피 해 지역을 다니면서 전도를 하다가 붙잡혀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하는데, 또다른 전설에 따르면 사지를 절단당했다고도 한다. 그의 순교 전설에 따라 십자가 또는 미늘창(도끼와 창을 결합한 무기)이 그의 상징이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가 마티아의 유골을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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