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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1. 12. 8, 프랑스 바니윌스쉬르메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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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4. 9. 27, 바니윌스쉬르메르 근처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화가·판화가.
거대한 나부상(裸婦像)으로 20세기초 조각에 덩어리와 엄격한 형태 분석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마욜의 작품들은 다양한 현대 추상조각의 혁신적인 실험에 기여했다.
처음에 그는 화가이자 태피스트리 디자이너였는데 이런 작품에는 특유의 장식적인 색면들로 그림을 그리는 나비파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40세가 다 되어 눈병을 앓게 되면서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의 성숙한 조각 양식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오귀스트 로댕의 매우 감각적인 조각을 거부했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 전통을 보존·정화하려고 했다. 〈지중해 The Mediterranean〉(1901경, 뉴욕 현대미술관)·〈밤 Night〉(1902, 파리 디나 비에르니)과 같은 작품은 그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조각에서 추구한 감정의 절제와 뚜렷한 구성, 매끈한 표면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작품이 풍만한 여체를 묘사하고 있지만, 예외로 몸이 마른 〈자전거선수 Cyclist〉(1907~08, 파리 국립현대미술관)라는 유명한 작품도 있는데, 이것은 뒤이은 구상적 표현주의 조각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10년 이후 마욜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그로 인하여 작품 제작 의뢰가 밀려들었다. 그는 미학적인 수단을 엄격히 절제했기 때문에 같은 주제를 되풀이하면서도 작품을 성공적으로 제작했다. 〈사슬에 묶인 동작 Action in Chains〉(1906, 파리 국립현대미술관)과 〈강 The River〉(1939~43경, 뉴욕 현대미술관)에서만 기본원칙을 바꿔 동요하는 인체를 묘사했다. 1939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조각을 더 애호했다. 또한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고대 로마의 명시선에 집어넣을 목판 삽화를 많이 만들어 출판미술을 되살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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