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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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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81 |
국적 | 중국 |
요약
중국의 소설가·비평가.
(병). Mao Dun. (웨). Mao Tun.
중국 근대문학, 이른바 '신문학'(新文學) 탄생 이래 계속해서 그 확립에 지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본명은 선더훙[沈德鴻], 자는 옌빙[雁冰]. 랑쑨[郞損]·쉬안주[玄珠]·펑쉬[馮虛]·팡비[方壁]·스멍[石萌]·스펑[石崩] 등의 많은 필명을 사용했지만 이중 마오둔이 가장 유명하다.
상하이[上海]에서 가까운 저장 성[浙江省] 퉁샹 현[桐鄕縣] 출신이다. 개화파 한의사였던 아버지를 10세 때 사별하고, 베이징대학교[北京大學敎] 예과(豫科)를 수료한 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계속 진학하지 못하고 상하이의 출판사 상우인서관[商務印書館]에 취직했다.
이때부터 그의 초기 문학활동이 시작되었다. 5·4운동 때 천두슈[陳獨秀] 등에게 영향을 받고 중국공산당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마오둔은 중국 신문학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1920년 신문학운동 최초의 문학단체인 '문학연구회'를 저우쭤런[周作人] 등과 결성, 기관지 〈소설월보 小說月報〉의 편집을 담당했다. 서양 각 유파의 근대문학과 그 사조를 정열적으로 번역·소개했고, 아울러 작가 육성에 힘을 기울였다. 사실을 중시하는 현실주의 문학사조인 인생파를 주창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반대했다.
피압박 약소민족에 대한 강한 공감이 문학연구회의 특징적 기조인데, 이것은 루쉰[魯迅]·저우쭤런 등과 함께 마오둔의 주장에 힘입은 바가 크다.
1926년 '대혁명'(1925~27)에 즈음해 광둥[廣東]으로 갔으며, 후에 우한[武漢] 혁명정부에 참여했으나 혁명이 좌절된 후 칩거했다. 〈루쉰론 魯迅論〉을 집필하고 나서 〈환멸 幻滅〉(1927)·〈동요 動搖〉(1928)·〈추구 追求〉(1928)의 3부로 된 장편소설 〈식 蝕〉을 간행(1930), 작가로 재출발했다.
〈식〉은 대혁명시기를 표현하려고 의도한 최초의 본격 장편소설이다. 1928~30년 일본에 건너가 중편 〈무지개 虹〉(1929, 미완) 외에 단편수필 등을 발표하고, 동시에 궈모뤄[郭沫若] 등이 창조사(創造社)와 태양사(太陽社)에서 제기한 〈식〉 비판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여 이른바 '혁명문학 논쟁'(프롤레타리아 문학논쟁)에 일익을 담당했다. 그는 관념적 언사를 구사하기보다는 작가와 긴밀한 농민 및 소시민을 우선적으로 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30년 귀국 후 루쉰 주변에 집결한 중국 '좌익작가연맹'의 일원으로서 그 지도이론 확립에 노력하면서, 동시에 장편소설 〈자야 子夜〉를 출판했다(1933). 마오둔의 가장 대표적 작품으로 꼽히는 〈자야〉는 상하이와 그 근교 농촌을 무대로 하여 1930년대 초기 중국사회의 전체상을 남김없이 묘사하려고 한, 웅대한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의도가 완전히 반영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모든 계층의 인물이 정확하게 배치되어 있고, 반식민지 상태에 있는 중국의 경제파탄을 직시하는 작가의 시각이 예리하며, 혁명의 어렴풋한 태동의 암시를 읽어낼 수 있다.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중국 신문학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이 작품을 전후하여 뛰어난 단편소설 〈임가포자 林家舖子〉(1932)·〈춘잠 春蠶〉(1932)과 역사에서 소재를 따온 단편을 발표했다. 또 '문예대중화 논쟁'을 통해 리얼리즘의 확립에 공헌했다. 해방 후에 발표한 〈야독우기 夜讀偶記〉(1958)를 그 집대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36년의 '국방(國防)문학 논쟁'에서는 루쉰 편에 서서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가 저우양[周揚] 등을 비판했다.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문예계의 통일에 진력했으며, 우한·홍콩·신장[新疆]·충칭[重慶] 등 각지를 전전하는 한편 쉬지 않고 펜을 들어 〈자야〉의 뒤를 잇는 미완의 장편소설 〈상엽은 2월의 꽃처럼 붉다 霜葉紅似二月花〉(1942), 한 여성의 수기를 빌려 충칭의 어두운 면을 그린 장편소설 〈부식 腐蝕〉(1941), 기록문학인 〈견문잡기 見聞雜記〉(1942), 희곡 〈청명전후 淸明前後〉(1945) 등을 발표했다.
그 사이에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옌안[延安]을 방문하기도 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1949년 이래 문화부장관 및 작가협회 주석에 취임한 그는 문화행정을 책임지는 지위에 있었으나 1965년 문화부장관직을 사임했다. 그 사이 창작은 없지만 신인작가 육성에 힘썼고, 〈고취집 鼓吹集〉(1959) 등에 여러 편의 평론을 기재했다. 소설과 수필을 포함한 〈마오둔 문집〉(1권, 1958~61)이 있다.
또한 중국 신화 연구에도 착수해 〈중국 신화 연구 ABC〉(1929, 필명은 쉬안주[玄珠])를 남기는 등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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