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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경상남도 중남부 남해안의 마산만에 있던 옛 행정구역. 2010년 7월 창원시로 통합되어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로 개편되었다.
대한민국 경상남도 중남부와 남해안의 마산만에 있던 옛 행정구역. 1970년대 이후 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많은 공장이 들어서고 인구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주택·교통·환경오염 등의 도시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항만공업도시이다. 1995년에는 창원군 5개면(진전면·진북면·진동면·구산면·내서면)을 통합한 마산시로 출범했다. 2010년 7월 1일 창원시로 통합되어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로 개편되었다.
연혁
삼국시대 초기에 마산지역에는 포상팔국 중 골포국이 위치했다.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에 골포국은 합포현으로 개칭되었다가 고려에 들어 1018년(현종 9)에 금주(김해)의 속현이 되었다. 1280년(충렬왕 6)에 정동행중서성을 합포에 설치하고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은 일본 정벌을 시도했다. 정벌은 실패로 끝났으나 그 준비와 지원에 애쓴 공로로 1282년(충렬왕 8)에 합포를 회원현으로 승격하고 현령을 파견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08년(태종 8)에 의창현과 회원현을 합하여 창원부로 승격시켰다. 창원부에 있는 하나의 포구에 불과했던 마산이 대도시로 성장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899년 개항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미 마산포는 경상도의 해안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1760년(영조 36) 마산포에 조창을 설치해 낙동강 서남부 일대 9개읍(뒤에 8개읍)의 조세를 수납했던 것은 마산포의 상업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만기요람>에는 마산장이 경상도 최대의 장시로 기록되어 있다.
1949년의 시제 실시에 따라 마산시로 바뀌었다. 마산은 1960년 부정 선거에 대한 격렬한 시위, 1970년 한국 최초의 수출자유지역 설치, 1973년과 1977년의 고속도로 개통, 1980년 부마사태 등 개항 이후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과정이 응축되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1990년에 합포구·회원구가 설치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창원군 내서읍이 회원구로, 구산면·진동면·진북면·진전면은 합포구로 편입되었다. 2010년 7월, 창원시·진해시와 합쳐져 통합된 창원시가 출범했다. 마산시 지역은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가 되었으며, 마산시청사는 마산합포구청사로 탈바꿈했다.
연혁
삼국시대 초기에 마산지역에는 포상팔국 중 골포국이 위치했다. 〈삼국사기〉에는 포상팔국이 209년에 아라가야를 공격했다고 했으나 곧 가야연맹에 병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골포국은 합포현으로 개칭되어 의안군(창원)의 영현이 되었다가 고려에 들어 1018년(현종 9)에 금주(김해)의 속현이 되었다.
1280년(충렬왕 6)에 정동행중서성을 합포에 설치하고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은 일본 정벌을 시도했다. 정벌은 실패로 끝났으나 그 준비와 지원에 애쓴 공로로 1282년(충렬왕 8)에 합포를 회원현으로 승격하고 현령을 파견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08년(태종 8)에 의창현과 회원현을 합하여 창원부로 승격시키고, 정동행성을 설치했던 곳에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慶尙右兵營]을 두었다.
1413년(태종 13)에 창원도호부로 개칭하고, 1601년(선조 34)에 대도호부로 승격했다. 창원부에 있는 하나의 포구에 불과했던 마산이 지금과 같은 큰 도시로 성장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899년 개항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미 마산포는 경상도의 해안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1760년(영조 36) 마산포에 조창을 설치해 낙동강 서남부 일대 9개읍(뒤에 8개읍)의 조세를 수납했던 것은 마산포의 상업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만기요람〉에는 마산장을 경상도의 최대 장시로 기록했다.
1899년에 마산포가 개항장으로 지정되자 기존 시가지[舊馬山] 남쪽 신마산 지역에 각국의 영사관 부지와 공동 조계 등이 들어서 도시가 급속히 확장되기 시작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창원 감리서가 폐지되고 마산 이사청이 설치되었으며, 마산과 삼랑진을 연결하는 군용 철도인 마산선이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내륙과의 왕래가 빈번해졌다. 1914년 군면폐합 때 종래의 마산부지역 중에서 각국 거류지와 외서면지역을 마산부로 정하고, 나머지 지역은 창원군·진해군에 소속시켰다.
1949년의 시제 실시에 따라 마산시로 바뀌었다. 마산은 1960년 부정 선거에 대한 격렬한 시위, 1970년 한국 최초의 수출자유지역 설치, 1973년과 1977년의 고속도로 개통, 1980년 부마사태 등 개항 이후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과정이 응축되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1990년에 합포구·회원구가 설치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창원군 내서읍이 회원구로, 구산면·진동면·진북면·진전면은 합포구로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소백산맥의 말단부로 높이 600~700m의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며, 이들 산지 사이에 소규모의 침식분지가 발달해 있다. 시의 서북쪽에 여항산(744m)·광려산(720m)·서북산(739m) 등이 솟아 함안군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의 기대봉(521m)·적산(497m) 등이 진주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시의 중앙에는 무학산(767m)·대산(727m)·대곡산(516m) 등이 솟아 있으며 진전천·진동천·태봉천·양덕천·삼호천·우산천 등이 이들 산지에서 발원해 남해로 흘러든다.
이들 하천을 중심으로 벼농사가 행해지나 평야의 발달은 미약하다. 시의 동남쪽은 마산만에 면해 있다. 마산만은 입구가 1km 내외로 매우 좁으며, 3면이 육지로 둘러 있고 조수간만의 차가 매우 적다. 또한 모도·돌섬 등이 방파제 역할을 해 항만입지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진해만에 면한 남쪽 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며 6개의 유인도와 17개의 무인도가 산재해 있다.
지질은 대체로 경상계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역을 지나는 진동층의 경우 흑운모화강암과 화강섬록암의 관입을 받아 그 주변에는 회색계통의 처트로 변질되어 있다. 이 진동층과 팔용산응회암 사이를 신라층의 안산암류가 관입한 후 이를 다시 불국사통의 마산암·각육석화강암·흑운모화강암·반암류가 관입한 복잡한 양상을 띠는 화강암지대이다. 진해만에 면한 지역은 난류의 영향으로 기후가 온난하다. 통합 전 마산시 지역은 연평균기온 14℃ 내외이며, 1월평균기온은 1.2℃ 내외, 8월평균기온은 26.4℃ 내외이다. 연강수량은 1,468㎜ 정도로 한국의 3대 다우지에 속한다. 한편 통합 전 창원군 지역은 연평균기온 12.4℃ 내외, 1월평균기온 -1.4℃ 내외, 8월평균기온 26.9℃ 내외이고, 연강수량은 1,363㎜ 정도이다.
난온대삼림대에 속하여 소나무·상수리나무·아카시아나무 등 온대활엽수 외에 사철나무·동백나무 등 난대성 상록활엽수가 자란다.
인구
분리·편입 이전 창원군의 인구수는 1960년대 이후 계속 감소했으나, 마산시·창원시의 통근권에 속하게 되면서 이들 도시의 인구가 유입되어 1988년 다시 증가했다. 한편 1949년 시 승격 이후 꾸준히 증가해온 마산시의 인구는 6·25전쟁 후 피난민의 대량 남하로 1960년 15만 8,010명에 이르렀고, 시가지도 무질서하게 팽창되었으나 1969년 도시재정비계획의 실시로 보다 정돈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70년 수출자유지역이 들어서면서 인구는 크게 늘어나 그해 18만 6,890명, 1975년 37만 1,917명, 1980년 38만 6,751명, 1985년 44만 9,247명, 1990년 50만 5,614명에 이르게 되었으며, 1970~90년 20년간의 증가율이 107.5%로 높은 인구성장률을 나타냈다.
그러나 1995년에는 창원군의 일부지역이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산시의 인구는 43만 5,378명으로 감소했으며, 1996년에는 43만 1,160명으로 또다시 감소해 1990~96년 6년 동안 14.7% 인구감소율을 보였다. 2006년 현재 인구는 42만 4,727명으로 1996년 대비 1.5%가 줄었다. 행정동별로 볼 때, 읍·면지역에 전체 시인구의 23.5%가 거주하고 동지역에 나머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내서읍(7만 5,558명)·월영동(3만 6,582명)·회원동(3만 1,356명)·양덕동(3만 9,652명)·구암동(2만 6,550명) 등에 밀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가지는 마산만 연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발달해 있으며, 지역 특성에 따라 북동부의 구마산, 남부의 신마산, 북부의 북마산, 동마산, 그리고 창원군 지역이었던 읍·면지역으로 나누어진다. 구마산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의 주요 거주지로서 서비스업이 밀집되었으며 신마산은 주요 관공서와 학교가 밀집해 있다. 북마산은 교통의 요지이며, 동마산은 1970년대 이후 공업발달과 함께 새롭게 형성된 지역이다. 구산면·진북면·진전면 일대의 해안에는 구릉성 산지의 산록에서 발원하는 하천의 하곡과 진해만에 연한 좁은 포구를 따라 어촌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내서읍·진동면 등지에는 중심시가지 인구의 유입으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산업과 교통
총경지면적 46.8㎢ 중 논이 34.57㎢, 밭이 12.23㎢로 경지율은 14.2%이다(2006). 최근에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겨울꽃과 감귤재배에 성공하여 현동·회원동·회성동을 중심으로 원예농업이 활발하다. 특히 현동에 있는 우산마을 꽃단지는 전국에서 소비하는 국화와 카네이션의 상당량을 공급한다. 진북면에서는 껍질이 불고 알이 굵으며 당분이 많은 밤고구마를 생산하며, 진전면 일대에서는 축산업이 활발하다. 이 지역은 일찍이 남해안의 어업 중심지였으나 1970년대 이후 임해공업단지 조성과 마산만 연안의 어업활동 금지로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구산면·진동면 등의 진해만에 연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홍합·굴·피조개·바지락 등을 생산하는 양식업이 성행한다. 이밖에 마른멸치·멸치젓도 생산되고 있다. 어업인구는 3,957명으로 시인구의 0.9%에 불과하다(2006). 1970년 제1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된 이래 외국자본을 유치한 각종 공장이 봉암동·양덕동·석전동·서성동 일대에 들어서 거대한 임해공업단지가 조성되었다(마산수출자유지역). 주요공업은 기계·섬유·화학·전자·금속 공업 등이며, 전통공업인 청주·간장 등의 양조업이 성행하고 있다. 또다른 전통공업으로 진전옹기가 생산된다. 특히 진전면 율치리는 진흙이 풍부하고 연중 기후가 온난하여 한때 전국에 옹기를 공급하는 주요생산지였으나, 도시산업에 밀려 2, 3가구만이 가내공업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한국철강·한일합섬·마산방직 등 총 590개 업체에 종업원 1만 7,686명이 종사하고 있다(2006).
남해고속도로와 구마고속도로가 연결됨으로써 영남지방 산업거점도시의 하나로 성장했으며, 그밖에 경전선과 각종 산업도로 및 국도가 부산·진해·창원·진주 등지와 연결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또한 마산항은 부산·통영·진해·거제 간을 왕래하는 연안여객선의 기점이다. 그러나 남부에 해당하는 내서읍·진북면·진전면 등은 구릉성산지가 많아 지역 내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도로총길이 631.59km, 도로포장률 75.3%이다(2006).
유물·유적·관광
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사적 1, 중요무형문화재 1)와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4, 기념물 9, 무형문화재 3), 문화재자료 6점 등이 있다. 해안가에 연해 있어 일찍부터 인간이 거주하여, 패총·지석묘 등의 선사시대 유적과 고분 등 가야시대의 유적이 많다. 지석묘는 진동면의 해안가에 분포한다.
주요 문화재로는 월영대(月影臺: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호)·관해정(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호)$·몽고정(蒙古井: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2호) 등을 비롯해 진북면의 의림사 경내에 있는 의림사3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진동면 진동리의 진해현관아 및 객사유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4호), 진전면 시락리 정곡마을의 칠원제씨 문중이 관리하는 만력34년진해현호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0호) 등이 있고, 현동에는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쓴 장지연묘(張志淵墓: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4호)가 있다.
성지로는 진동면의 진해읍성지, 내서읍의 포덕산성지 및 이산성지(鯉山城址:경상남도 기념물 제52호)·당마산성(堂馬山城)·자산동성지(玆山洞城址) 등이 있다. 온화한 기후와 남해안의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한국 제1의 피한지·휴양지로 알려져온 마산은 오늘날 급속한 도시화·공업화로 옛 명성은 다소 퇴색했으나 다양한 관광자원의 개발에 힘쓰고 있다. 주요 관광자원으로는 월영대·몽고정·관해정 등의 유적과 4·19혁명의 불씨가 되었던 3·15의거 기념탑이 있으며, 무학산·돝섬유원지·가포유원지·산호공원 등 자연관광자원과 수출자유지역을 비롯한 산업관광자원이 있다.
이밖에 진동면 요장리에 있는 광암해수욕장은 원래 양식을 하던 어촌이었으나, 1976년 마산시의 해수욕장이 수질오염으로 폐쇄됨으로써 이곳에 인공 백사장과 부대시설을 갖추어 만든 해수욕장이다. 진동면·진북면·진전면(과거에 3진이라 함)에는 우산8경이 있어 마산시민들의 1일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다.
교육과 문화
전통 교육기관으로 진동면 교동리에 진해향교가 있었으나 1908년 진해현(진해군)이 폐지되면서 철폐되었다. 서원으로는 진전면 오서리의 회계서원, 내서읍 원계리의 증산서원을 비롯해 회원서원·월영서원·구암서원 등이 있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899년 개교한 마산포일어학교이다. 1906년 설치된 성호리교회의 독서숙이 1909년 사립창신학교로 정식인가를 받고 1912년 고등과를 병설한 데 이어, 1913년 여학생을 위한 의신여학교를 신설하는 등 신교육의 대부분을 사립학교에서 담당했다. 1956년 합천에 있던 해인대학이 마산으로 이전하면서 지금의 경남대학교로 발전했다. 2007년 현재 유치원 67개소, 초등학교 41개교, 중학교 25개교, 고등학교 16개교와 경남대학교 및 마산대학·창신대학이 있다.
문화행사로는 마산향토문화진흥회가 주관하는 만날제가 매년 9월에 열리고, 진동면에서 향토민속경연대회로 삼진민속문화제가 열린다. 주요 민속놀이로는 삼진큰줄다리기와 마을의 안녕과 풍작을 기원하는 마산농청놀이(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6호)가 있으며, 이 놀이에는 닭머리대기·몸통줄다리기 등이 함께 행해진다. 특히 삼진큰줄다리기에 사용되는 줄은 몸통지름 1.5m, 길이 200m나 되는 초대형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진동면 인곡리, 내서읍 삼계리·호계리 등의 마을에서는 매년 동제를 지내고 있다. 특히 내서읍 호계리의 동제는 구비전승과 혼합된 형태로, 호랑이가 마을을 건넜다는 음력 정월 초사흗날 열린다.
설화로는 〈만날고개이야기〉·〈말이나해보지고개이야기〉·〈돝섬과 가락왕 총비에 얽힌 이야기〉 등 지명과 기암에 관한 것이 전한다. 이 지역이 공업화되기 전에는 주로 농업과 어업을 생계로 삼았기 때문에 민요는 농·어업에 관한 노동요가 많다. 〈모찌기노래〉·〈논매기노래〉·〈노젓는노래〉·〈얼기돌리기노래〉·〈그물당기기노래〉 등이 있으며, 의식요로는 〈상여노래〉·〈시집살이노래〉 등이 구전되고 있다.
2006년 현재 의료기관으로는 마산삼성병원·마산의료원·국립마산결핵요양원·제일병원 등 종합병원 6개소와 일반병원 8개소, 의원 231개소, 특수병원 1개소, 요양병원 5개소, 치과의원 95개소, 한의원 92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10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은 아동복지시설 4개소, 노인복지시설 3개소, 장애인복지시설 1개소, 여성복지시설 4개소, 정신질환자요양시설 1개소, 부랑인시설 1개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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