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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284경, 이탈리아 시에나 공화국 시에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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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344, 프로방스 아비뇽 |
국적 | 이탈리아 |
요약 고딕 미술의 중요한 대표자이며, 시에나 미술의 영향을 널리 보급하는 데 가장 크게 이바지했다. 시모네 마르티니는 두초 디 부오닌세냐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크고 아마도 그에게서 조화롭고 순수한 색채에 대한 애착과 초기 인물 유형의 대부분을 물려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르티니는 젊은시절에 이탈리아에서 배운 프랑스 고딕 미술의 영향을 받은 우아한 선과 섬세한 해석에 두초의 유산을 덧붙였다. 마르티니는 고딕 양식의 장식적인 윤곽을 완벽한 경지로 끌어올렸고, 이런 윤곽의 율동을 양감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처음으로 문서에 기록된 마르티니의 그림은 시에나 공회당의 살라델마파몬도에 있는 거대한 프레스코 〈마에스타〉이다. 1317년 이후 나폴리, 피사, 아시시 등의 교회에 많은 그림을 그렸다. 마르티니는 두초 이후 시에나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였다. 마르티니는 14세기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15세기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후에 나폴리와 피사, 오르비에토, 아시시 및 아비뇽의 화가들이 마르티니의 미술을 모방했다.
시모네 마르티니는 고딕 미술의 중요한 대표자이며, 시에나 미술의 영향을 널리 보급하는 데 가장 크게 이바지했다(고딕 예술).
시모네 마르티니는 두초 디 부오닌세냐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크고 아마도 그에게서 조화롭고 순수한 색채에 대한 애착과 초기 인물 유형의 대부분을 물려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모네 마르티니는 젊은시절에 이탈리아에서 배운 프랑스 고딕 미술의 영향을 받은 우아한 선과 섬세한 해석에 두초의 유산을 덧붙였다. 마르티니는 고딕 양식의 장식적인 윤곽을 완벽한 경지로 끌어올렸고, 이런 윤곽의 율동을 양감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처음으로 문서에 기록된 시모네 마르티니의 그림은 시에나 공회당의 살라델마파몬도에 있는 거대한 프레스코 〈마에스타 Maestà〉이다. 이 그림은 왕좌에 앉은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천사와 성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마에스타〉는 1315년에 완성되었고 서명까지 되어 있지만, 시모네 마르티니 자신이 1321년에 손질을 더했다. 이 그림은 두초가 1308~11년에 그린 〈마에스타〉를 자유롭게 변형한 것이나, 마르티니의 후기 작품은 그가 원근법적 시각에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두초의 작품이 가진 계층적 구도를 벗어났고, 추상적이며 배경이 없는 초기 작품과는 달리 구체적인 내용을 갖게 되었다. 마르티니는, 왕관을 쓰고 화려한 옷을 입은 동정녀 마리아를 고딕식 차양 아래 조정 신하들을 거느린 고딕풍의 여왕으로 묘사했다.
1317년경에 시모네 마르티니는 나폴리에서 〈동생인 앙주의 로베르 왕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툴루즈의 성 루도비쿠스 St. Louis of Toulouse Crowning His Brother, King Robert of Anjou〉라는 장엄한 제단화를 그렸다.
2년 뒤, 시모네 마르티니는 피사의 산타카테리나 교회를 위해 채색이 화려하고 웅장한 성모 마리아 폴리프틱(4개 이상의 패널을 이어 맞춘 그림)을 만들었다. 1320년대 중엽에 마르티니는 투르의 성 마르티누스의 일생을 묘사한 10개의 장면을, 이탈리아 아시시의 산프란체스코 교회의 아래층 부분에 있는 산마르티노 예배당에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 그림들은 기사도적인 이상으로 가득 차 있다.
시에나 공화국의 장군 구이도리초 다 폴리아노가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의 초상화(1328)는 시에나에서 비종교적 주제로 그려진 최초의 미술작품일 것이다. 이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기마 초상화에 중요한 선례가 되기도 했다. 한편 시모네 마르티니가 원래 시에나 대성당을 위해 그렸지만 지금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수태고지 Annunciation〉는 의도적인 비현실적 표현으로 되어 있다.
시모네 마르티니는 1333년에 이 작품을 완성하고, 오랫동안 함께 일한 매부이자 시에나의 화가 리포 멤미와 함께 작품에 서명했다. 우아한 윤곽선의 율동과, 3폭 패널화 〈수태고지〉의 가운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브리엘 천사와 성모 마리아의 영적인 모습을 모방한 화가들이 많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마르티니가 이 걸작에서 보여준 활기찬 윤곽과 초자연적 형태를 성취하지는 못했다.
1340년에 시모네 마르티니는 아비뇽 교황청에서 일하면서 페트라르카를 알게 되었다.
시모네 마르티니는 시인이 사랑하는 라우라의 초상화(지금은 사라짐)를 그렸는데, 이 사실은 마르티니를 칭송한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2편을 통해 알려졌다. 마르티니는 두초 이후 시에나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였다. 마르티니는 14세기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15세기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후에 나폴리와 피사, 오르비에토, 아시시 및 아비뇽의 화가들이 마르티니의 미술을 모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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