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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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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282. 12. 11, 웨일스 포이스 빌스 근처 |
국적 | 웨일스, 영국 |
요약 웨일스 북부지방 귀네드의 군주.
웨일스 땅에서 잉글랜드인을 쫓아내려 했으나 실패했다. 잉글랜드에 의해 프린스 오브 웨일스(웨일스 공)로 공식 인정받은 유일한 웨일스인 통치자였는데, 그가 죽고 1년도 안 되어 웨일스는 완전히 잉글랜드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그의 할아버지 리웰린 압 이오워스(1240 죽음)는 귀네드를 웨일스 세력의 중심지로 만들었지만 아버지인 데이비드 압 리웰린의 짧은 재임(1240~46) 동안 귀네드는 크게 쇠퇴했다.
1246년 데이비드가 죽자 리웰린과 형제 오웨인이 남아 있는 영토를 나눠 가졌다. 1255년 리웰린은 오웨인의 영토를 장악했으며, 웨일스 지방에서 귀네드의 세력을 다시 한 번 떨치기 위해 나섰다.
잉글랜드 왕 헨리 3세가 귀족들과 갈등을 겪자 이를 이용해 자신을 프린스 오브 웨일스라 선포하고 다른 웨일스인 군주들로부터 충성서약을 받았다(1258). 1262년 웨일스 남부의 잉글랜드 영주들에 맞서 싸움을 일으켰고 헨리 3세에 반대하는 귀족들의 대표 시몽 드 몽포르와 연합했다. 시몽은 1264년 잉글랜드의 최고 권력을 잡았으나 이듬해 살해당했다. 결국 2년 뒤 리웰린은 헨리의 대(大)군주권을 인정하는 조약에 서명했고 그 대가로 다른 웨일스 군주들로부터 충성서약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헨리 3세가 죽고 에드워드 1세가 즉위하자(1272) 그는 다시 한번 잉글랜드에 도전했다. 그러나 에드워드가 웨일스로 쳐들어와 1276~77년에 리웰린을 항복시켰다. 1282년 리웰린은 형제 데이비드와 함께 민족 독립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빌스 근처의 전투에서 죽었고, 그뒤 곧 반란은 진압되었다. 데이비드는 1283년에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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