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하나의 카메라로 초당 16토막의 속도로 촬영과 영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해 영화의 선구자로 꼽힌다. 이들의 초창기 영화들은 프랑스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것으로 예를 들면 기차의 도착, 카드놀이, 일하는 대장장이, 아기에게 젖 먹이는 모습, 군인들의 행군, 번화한 거리의 움직임을 담았다.
화가에서 전향한 사진작가의 아들이었던 이 두 소년은 아버지가 정착한 리옹에서 학창시절부터 과학과목에 두각을 나타냈다. 루이는 수익 높은 필름의 개발을 연구하다 18세 때 연구의 성과를 보자 아버지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 사진건판 생산공장을 세워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의 성공으로 1894년경 뤼미에르 형제는 연간 약 1,500만 개의 사진판을 생산할 정도였다. 아버지가 에디슨의 활동사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영사기 개념을 발명했다.
파리에서 상영된 이들의 영화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La Sortie des ouvriers de l'usine Lumière〉(1895)이 최초의 영화로 간주된다.
화가에서 전향한 사진작가의 아들이었던 이 두 소년은 아버지가 정착한 리옹에서 학창시절부터 과학과목에 두각을 나타냈다. 루이는 수익 높은 필름의 개발을 연구하다 18세 때 연구의 성과를 보자 아버지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 사진건판 생산공장을 세워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의 성공으로 1894년경 뤼미에르 형제는 연간 약 1,500만 개의 사진판을 생산할 정도였다.
그해 아버지 앙투안은 파리에서 열리는 토머스 에디슨의 활동사진 영사기 전시회에 초청받았다. 아버지는 리옹으로 돌아와 그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기계를 루이와 오귀스트 형제에게 설명했고 그들은 움직이는 그림과 영사를 합성하는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루이는 그 연구에 성공했고 1895년 이에 대한 특허를 냈다. 당시 이들은 이 발명품보다는 동시에 이룩한 천연색 사진의 개선을 더 중히 여겼으나, 1895년 12월 28일 파리의 카퓌신가(街)에 있는 그랑 카페에서 열었던 영화상연은 폭넓은 대중의 갈채를 받았고 이것이 영화역사의 시초가 되었다.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기계는 하나의 카메라로 초당 16토막의 속도로 촬영과 영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장비였다. 이들의 초창기 영화들(1896년에 40편 이상 제작)은 프랑스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것으로 예를 들면 기차의 도착, 카드놀이, 일하는 대장장이, 아기에게 젖 먹이는 모습, 군인들의 행군, 번화한 거리의 움직임을 담았다. 그밖에 짧은 희극들도 있었다.
형제는 프랑스 사진협회의 회의를 담은 최초의 뉴스 영화와 리옹 소방국에 관한 기록영화 4편도 처음으로 제작했다. 1896년부터 이들은 전 세계 여러 도시에 잘 훈련되고 혁신적인 촬영기사 겸 영사기술자들을 파견하여 영화를 상영하고 새로운 소재들을 찍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