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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63. 3. 23(구력 3. 12), 러시아 리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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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26. 1. 30(구력 1. 18), 모스크바 |
국적 | 러시아 |
요약 러시아의 장교·정치가.
러시아 황제 파벨 1세(1796~1801 재위)의 측근이자 고문이었으며,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때는 모스크바 사령관을 지냈다. 타타르 혈통의 유서 깊은 귀족가문 출신으로 1785년 군대에 들어갔다. 파벨이 황제가 된(1796. 11. 17[구력 11. 6]) 해에 소장으로 진급했고 황제의 부관이 되었다. 1798년에 외무장관이 되었으나 영국과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를 모두 반대해 대영 프랑스-러시아 동맹 결성을 방해하다가 결국 1801년 3월 4일(구력 2. 20)에 해임당했다.
그는 모스크바 근교의 보로노보에 있는 영지로 물러나 곧 새 황제 알렉산드르 1세(1801~25 재위)의 어머니인 마리아 표도로브나 황태후와 황제의 여동생 예카테리나의 후원을 받는 보수주의적인 애국 서클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1809년에 예카테리나는 로스토프친을 알렉산드르 1세에게 소개했고, 알렉산드르는 1812년 5월 그를 모스크바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모스크바에 친나폴레옹 비밀결사들이 많이 있고 그들이 러시아의 패배소식을 듣기라도 하는 날에는 농민반란을 선동해 러시아의 전쟁노력을 방해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거짓 승전보를 계속 발표했다. 러시아군이 프랑스의 모스크바 진격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더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자 그는 방어작전을 세우고 있는 중이라고 민중들에게 장담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전투 한번 못 치르고 모스크바를 적군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음을 보고받았을 때야 비로소 소개 작전을 폈다.
그는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점령한(1812. 9) 첫날 도시의 3/4을 태운 대화재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전해지는데, 그 자신은 1823년 파리에서 발표한 소책자 〈모스크바 화재의 진상 La Vérité sur l'incendie de Moscou〉에서 이를 부정했다. 이 화재가 주요원인으로 작용해 나폴레옹군은 겨울을 지낼 군수품을 보급받지 못했으며, 나폴레옹은 모스크바 철수를 결정하고 그의 군대를 파멸시키기에 이른 후퇴를 감행했다. 나폴레옹이 패배한 뒤 로스토프친은 알렉산드르 1세를 수행해 빈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얼마 뒤 황제의 총애를 잃자 외국에 머무르다가 1825년에야 러시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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