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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06. 6. 28, 실론 마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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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57. 7. 4, 인도 러크나우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군인·행정관.
인도에서 빈틈없는 정책을 펼쳐 펀자브 지방에 대한 영국의 통치를 공고히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823년 벵골 포병대에 들어간 그는 제1차 영국-미얀마 전쟁(1824~26) 때 아라칸 포위전에서 활약했다.
우르두어·힌디어·페르시아어를 공부했고 1833년에는 파키스탄 북부의 노스웨스트 주 측량부에 들어갔다. 1839년 펀자브 피로즈푸르에 대한 책임을 맡음으로써 시크교도들의 정치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카불에서 철수하던 영국군이 아프간군에게 대량으로 학살당한 뒤 로렌스는 1841년 시크교도와의 동맹관계를 지속시키는 임무를 맡아 페샤와르로 파견되었다.
네팔 주재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중 제1차 시크 전쟁(1845~46)이 일어나자 페로제샤로 소환되었으며 1846년 라호르의 감독관으로 임명되었고, 나중에는 주재 사무관으로 일했다. 그는 시크 군대의 규모를 줄였고 캉그라 지방과 카시미르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으며 와지르(이슬람 행정관) 랄 싱을 해임시켰다.
바이로왈 조약(1846)으로 시크 세력에 미치는 영국의 영향력이 명확해진 뒤 로렌스는 수티(남편의 장례식 때 과부가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것)·유아살해·강제노동 등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자신에게 부여한 시크 국가의 법을 마련했다. 로렌스는 고국으로 돌아가 있던 1848년 기사작위를 받았고 제2차 시크 전쟁(1848~49)이 일어남에 따라 인도로 돌아왔다. 그는 충고와 충동적인 행동으로 새로 부임한 인도 총독 댈후지 백작 제임스 램지를 화나게 했지만 당시 새로 합병한 펀자브의 행정장관이 되었다. 그는 정치사건을 책임졌고 동생 존은 재정문제를 맡았다.
그는 시크 귀족들에게 연금이나 넓은 토지를 주는 등 관대한 정책을 쓰려 했으나 동생 존은 세금을 줄이고 지주의 권리를 축소시킴으로써 평민들의 지위를 개선시키고자 했다. 동생 및 댈후지 백작과의 정치적 충돌로 말미암아 그는 근무지 전환을 원했으며 1852년 라지푸타나로 발령받았다. 1857년에는 오우드로 옮겼으나 그곳은 합병과 급작스런 토지개혁, 군대반란 등으로 심각한 상태였다. 그는 러크나우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적절히 지연시켰고 6개월 동안 포위당한 러크나우를 훌륭히 지켜냈다. 7월 2일 치명상을 입은 그는 영국 정부가 그를 지방 총독으로 임명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이틀 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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