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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76. 7. 3, 프로이센 데사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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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747. 4. 7, 데사우 |
국적 | 프로이센 |
요약
안할트데사우의 제후, 프로이센의 육군원수·개혁가.
별칭은 Der Alte Dessauer.
철제 탄약 꽂을 대(ramrod)를 발명했으며 프로이센에 근대적인 총검을 도입했다. 그가 창건한 프로이센 군사제도는 1806년까지 변함없이 유지되었으며 프로이센을 유럽 강대국으로 만들려는 프리드리히 2세의 야심을 실현시켜주었다.
1695년 프랑스와의 전투에 참가하면서 군 생활을 시작했으며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1701~14) 때는 동맹군에 파견한 프로이센군을 지휘했다. 오스트리아의 육군 원수인 사보이의 외젠 공과 친구였으며 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프랑스 등지에서 싸우면서 도나우 강의 회흐슈테트(바이에른, 1703), 카사노다다(이탈리아, 1705), 토리노(1706), 투르네(벨기에, 1709), 말플라크(프랑스, 1709) 등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1715년 프로이센군을 이끌고 스웨덴의 카를 12세와 싸워 슈트랄준트와 뤼겐 섬에서 승리했다.
뒤이어 찾아온 오랜 평화시기에 조직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철제 탄약 꽂을 대(나무로 된 것은 전투중에 부러지기 쉬움), 근대식 총검(발사를 하려면 총신에서 빼내야 했던 플러그 총검을 대신함)을 비롯해 1690년대말 자신의 연대 안에 통일된 행진방식을 도입했으며, 1715년 이후로는 이런 개선점을 프로이센군 전체에 보급했다. 엄격하고 때로는 냉혹한 그의 지도로 프로이센 보병은 기강과 신속한 사격술을 갖추게 되어 후에 프리드리히 2세는 수적으로나 세력면에서 훨씬 우세한 적들과 싸워 승리할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의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군주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1713~40 재위)의 신임과 도움을 받았다. 전장에서의 경험으로 그는 항상 기병대나 포병대보다는 자기가 속한 보병대를 좋아했다. 1740년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한 뒤 다시 전쟁이 일어났고, 이때 노쇠한 몸으로 다시 군대를 지휘했다. 1745년 12월 14일 프리드리히가 그를 도우러 오는 동안 '노병 데사우어'는 작센의 케셀스도르프에서 우세한 병력의 오스트리아군·작센군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투는 그의 오랜 전투 경력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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