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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그리스 동부, 에게 해 북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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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90,000명 (2016 추계) |
면적 | 1,632.8㎢ |
대륙 | 유럽 |
국가 | 그리스 |
요약 에게 해에 있는 섬 가운데 크레타 섬과 에보이아 섬 다음으로 큰 섬. 렘노스 섬 및 아이오스에브스트라티오스 섬과 더불어 그리스의 레스보스 주를 이룬다. 지질학적으로 소아시아 해안과 연결되지만 폭이 10~23km인 2개의 얕은 해협이 사이에 있다. 항구도시로서 섬에 건설된 미틸레네는 나중에 레스보스와 둑으로 연결되어 2곳의 항구를 이루었다. 오늘날 안디사 북쪽으로 북서쪽 해안을 끼고 있는 안티사는 BC 168년 로마인들에게 파괴당했고, 남서쪽 해안에 있는 에레수스에서는 BC 7세기의 시인 사포, BC 4~3세기의 철학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후계자인 테오프라스토스가 태어났다.
렘노스 섬 및 아이오스에브스트라티오스 섬과 더불어 그리스의 레스보스 주를 이룬다. 주도인 미틸레네는 섬의 주요 도시이며 그리스 정교회 주교관구이다. 때로 그리스 남부에 있는 스포라데스와 함께 분류되는 레스보스는 그 이름이 고대 그리스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에게 해 제도 가운데서도 일찍부터 정착이 이루어진 곳이다.
지질학적으로 소아시아 해안과 연결되지만 폭이 10~23km인 2개의 얕은 해협이 사이에 있다. 이들 해협은 무셀림 해협(북쪽)과 미틸리니 해협(동쪽)으로 3각형 모양을 한 섬의 선단에서 만나 터키 에드레미트 만의 입구를 이룬다. 들쭉날쭉한 해안선에는 어귀가 좁은 만인 게라스(남동쪽)와 칼로니(남서쪽)가 들어와 있다. 서쪽은 대부분이 화산지대인데, 온천이 많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심한 지진을 일으켜왔던 불안정한 지층구조임을 알 수 있다. 주요봉우리인 레페팀누스 산(아이오스일리아스)은 높이가 968m이다. 칼로니 서쪽지역에는 고유의 식생(植生)이 잘 보존되어 있다. 대다수의 주민이 미틸레네 부근에 모여 산다.
항구도시로서 섬에 건설된 미틸레네는 나중에 레스보스와 둑으로 연결되어 2곳의 항구를 이루었다. 미틸레네·메팀나·안티사·에레수스·피라 등 레스보스에 펜타폴리스라는 별칭이 생기게 한 5개 도시 외에도 칼로니 북서쪽에 있다가 BC 5세기에 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리스바가 있다. 칼로니스 만 연안의 작은 계곡에 있던 피라도 BC 231년경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오늘날 안디사 북쪽으로 북서쪽 해안을 끼고 있는 안티사는 BC 168년 로마인들에게 파괴당했고, 남서쪽 해안에 있는 에레수스에서는 BC 7세기의 시인 사포, BC 4~3세기의 철학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후계자인 테오프라스토스가 태어났다.
북쪽 해안에 있는 메팀나는 그리스 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지명으로 이 이름을 본뜬 예술가 거주마을(이전에는 몰리보스)이 있으며 지금은 미틸레네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사포와 그녀의 모임이 여성간의 동성연애 행위를 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여성간의 동성연애에 사포의 고향인 이 섬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레스비어니즘).
레스보스는 오늘날의 다르다넬스 해협인 헬레스폰트 교역로 부근에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전략상으로나 상업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1929~33년 영국 고고학 조사단이 미틸레네 북쪽에 있는 테르미와 안티사를 발굴했는데 이들은 중요한 청동기시대(BC 3000~2750경) 초기의 마을이었다. 트로이아 것과 같은 검은 도기로 보아 테르미는 트로아스 지역이었음이 확실하다.
레스보스는 BC 2000년 인구가 줄기 전까지 키클라데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BC 1050년경 아이톨리아인들이 이주해와 주요정착지로 만들고 미틸레네를 수도로 삼았는데, 섬은 피타코스(BC 650~570경)가 독재권을 행사하여 내란을 종식시킨 후 발전했다. 그리스 서정시들은 알카이오스와 사포뿐만 아니라 BC 7세기에 레스보스에서 태어난 음악가인 테르판데르와 주신(酒神) 찬가주의자 아리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헬레스폰트(다르다넬스)에 있던 시게움을 차지하기 위해 아테네와 오랫동안 전쟁을 벌이다 해전에서 패배하고 BC 527년 페르시아에게 굴복했으며, 그후 BC 479년 페르시아 해군이 패함으로써 자유를 찾게 되었다. 그뒤 아테네 주도하에 델로스 동맹에 가담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 초기에 미틸레네 과두정치의 지배자가 반란을 일으켰지만 아테네의 보복으로 끝을 맺었다(BC 428~27). 그뒤 펠로폰네소스에 살던 종족들에게 잇달아 침략을 받다가 BC 405년 스파르타에게 넘어갔다. BC 389년 트라시불로스가 아테네를 위해 섬 대부분을 되찾았고 레스보스는 BC 377년 제2차 아테네 동맹에 가담했다. 그러나 BC 33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맞서 싸우던 페르시아의 멤논 제독이 해군기지로 이용한 뒤부터 다른 침략자들도 침략기지로 이용했다. 이것은 로마의 폼페이가 미틸레네를 자유도시로 만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는 동안 섬은 번영을 누렸으며, AD 809년 이레네 황후가 이곳에 유배되었다. 821, 881, 1055년에 사라센의 공격을 받고 휘청거리다가 1091년 셀주크 투르크에게 함락당했다. 1224년 비잔틴의 황제들이 이곳을 되찾았고 1354년 제노바 상인가문에게 넘겼다. 그러나 1세기 동안 번영을 누린 다음, 1462~1911년 투르크인들이 지배하게 되었으며 그뒤 그리스 왕국에 합쳐졌다.
레스보스에 있는 비옥한 평야와 계곡에서는 포도·곡물을 비롯해 주요작물이며 수출품인 올리브를 재배한다. 가죽·비누·담배도 생산되며 정어리양식업이 중요한 산업이다. 1867년에 미틸레네를 파괴했던 것 같은 끔찍한 지진들이 장애물이 되고 있는데, 고대의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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