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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5. 1. 3,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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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미국 |
요약 1930년대 미국 사회사실주의 유파의 대표적인 화가.
처음에 매사추세츠 주 록스버리에 있는 유대인 복지 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그후 보스턴 미술관에서 공부한 뒤 1929~31년 하버드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935년에는 공공사업진흥국(WPA)의 연방예술계획에 참여했다. 그는 보스턴 빈민가에 화실을 마련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그리고, 부패한 정치가들을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그는 유럽 표현주의 화가들의 극적인 왜곡 수법에서 영향을 받았다. 1936년에 발표한 〈두뇌 위원회 Brain Trust〉와 이듬해 발표한 〈순수 이성의 축제〉로 명성을 얻었고, 첫번째 개인전은 1939년에 뉴욕 시에서 열었다. 〈재판 The Trial〉(1953~54, 시카고 미술연구소 소장)·〈악한의 장례식 Gangster Funeral〉(1952~53)·〈예루살렘을 방문한 모스크바의 총주교 The Patriarch of Moscow on a Visit to Jerusalem〉(1975) 및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회담 장면을 가상으로 그린 3부작 〈범종족 Panethnikon〉(1978) 등은 모두 20세기 중반에 신랄한 사회 풍자의 맥을 이었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9년 모스크바 국무부 전시회에 출품된 그의 작품 몇 점을 격렬하게 비판한 것은 레빈의 풍자적 경향 때문이었다. 흥미롭게도 바티칸은 레빈의 작품에 대해 보다 많은 이해심을 보여주었다. 1973년에 교황 파울루스 6세는 레빈의 〈카인과 아벨 Cain and Abel〉을 구입하면서, 바티칸 미술관은 그의 작품을 언제라도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미국 예술가에게는 이례적인 영광이었다. 1978년에 뉴욕 시의 유대인 미술관은 레빈 회고전을 열었다. 레빈은 화가인 루스 지코와 결혼했고, 딸 수재나도 역시 예술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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